[대만 신남향정책下] 대만, 종속된 경제·무역 脫중국 목적… '사드 보복' 한국에도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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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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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리덩후이·천수이볜 전 총통도 추진… 대만 기업들 외면으로 실패

아주경제 타이베이(대만) 모종혁 통신원 = 이달 초 필자는 신남향(新南向)정책의 본질과 전망을 살피기 위해 대만 타이베이(臺北)의 국립정치대학을 찾았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정치대는 법률·정치·외교·경영·무역 등에서는 최고 명문인 대만대학과 쌍벽을 이룬다.

1927년 국민당이 당 간부 양성을 위해 설립된 이 대학의 초대 총장은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이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1984년 법학과 교수로 임용돼, 국제무역학과 교수를 거치면서 2000년까지 정치대에서 재직했다. 차이 총통은 이 기간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정계에 투신했다.

정치대는 태생적으로 친(親)국민당·친중 성향이 강하다. 이에 반해 대만대는 친민진당·친일 성향을 띠고 있다. 그 점을 감안하고 만났던 류더하이(劉德海) 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장 겸 WTO연구센터장은 전혀 뜻밖의 발언을 쏟아냈다. 류 교수는 “신남향정책은 중국에 종속됐던 경제·무역 구조를 동남아와 서남아로 다변화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됐다”면서도 “대만이 처한 경제 현실이 과거에 달라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단언했다.
 

차이잉원 총통이 정계 진출 전 교수로 재직했던 국립정치대학. [사진=모종혁 통신원]


사실 1990년대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과 금세기 초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집권기에도 대만기업의 동남아 투자를 장려했었다. 1993년 리 전 총통은 기업들의 대중 투자가 확대될 것을 두려워해서 남향정책을 꺼내들었다. 1996년에는 ‘계급용인(戒急用忍·중국 투자를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자)’을 주창하며 동남아로의 공장 이전을 장려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에 향했다. 하지만 봇물이 터진 듯 대륙으로 자본과 공장을 갖고 넘어가는 기업들을 막진 못했다.

천 전 총통도 대만 독립을 공공연히 들먹이며 남향정책의 계승하고자 했다. 그러나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대만기업들은 경제가 도약하고 투자환경이 개선될 것을 예견하며 훨씬 적극적으로 중국으로 몰려갔다. 이에 따라 1992년 이래 대만이 중국에 투자한 건수는 9만4000건, 금액으로는 1조5129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2011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발효되면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경제와 무역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해졌다.

이는 최근 통계로 잘 드러난다. 지난해 대만의 전체 수출 2309억4000만 달러에서 교역국 1위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으로, 그 비율이 무려 40%에 달한다. 이는 2~4위인 동남아(18.3%), 미국(12%), 유럽(9.4%)을 모두 합해도 높다. 또한 전체 무역수지의 흑자 494억6000만 달러는 모두 중국과의 교역에서 나왔다. 올 1~4월 대중 수출은 434억5000만 달러로, 135억6000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올해 전체 흑자분도 모두 중국 덕분이다.
 

타이베이 시먼띵(西門町)에서 철사로 수공예품을 파는 가판대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인도 관광객. [사진=모종혁 통신원]


문제는 이런 경제 종속 상황을 빌미 삼아 중국이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정부는 차이 총통의 취임 전부터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라며 정치·외교 공세를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차이 총통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자, 단체 관광객의 대만 방문을 제한했고 대만 상품의 통관 절차를 강화했다. 작금의 경제·무역·해외투자 등에서 심각한 중국 의존도와 지난해부터 중국이 진행하는 보복 조치는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이나 사드 배치 이후 당한 보복과 아주 유사하다.

이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극에 달해 있다. 지난 9일 대만 대륙위원회가 정치대 선거연구센터에 의뢰해 성인 10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4%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특히 83.9%는 중국이 대만의 대외 활동에 압박을 가해 대만의 권익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대만은 중국의 반대로 9년 만에 처음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80.9%는 차이 총통의 기조대로 양안이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대만인들의 정서는 정계 판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월 총통 및 입법원 선거에서 친중 성향의 국민당은 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취임 직후 56%에서 반 토막(28%)이 난 지금도 국민당의 지지율은 23.5%로 33.9%인 민진당보다 낮다. 사실 차이 총통의 신남향정책은 현재로써는 성패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 허나 중국정부의 사드 보복을 경험한 우리정부와 기업에게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류더하이 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장 [사진=모종혁 통신원]


◆류더하이 교수, "노동집약업종 장벽 높여… 中企 중심 대만에 불리"

필자와 인터뷰를 가진 대만의 석학 류 교수는 신남향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 과거 리덩후이 전 총통은 남향정책을 추진했고, 천수이볜 전 총통도 그 정책을 계승했었다. 차이잉원 총통이 다시 신남향정책을 들고 나온 배경은 무엇인가?

"신남향정책은 중국에 종속됐던 경제·무역 구조를 동남아와 서남아로 다변화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청년층의 일자리를 폭넓게 창출하려는 의도도 담겨져 있다. 과거 남향정책은 중국으로 향하는 대만기업의 해외투자를 동남아로 돌리려는 데만 급급했다. 하지만 중국이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데다, WTO까지 가입하면서 기업들은 오히려 중국투자에 열을 올려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2008년부터 중국 내 투자환경이 급변했다. 노동법이 개정돼 노동자의 권익이 강화됐고, 최저임금이 해마다 10~20%씩 급등했다. 중국 정부가 과거와 달리 노동집약적 기업의 투자에 장벽을 쌓고 하이테크기업만 환영했다. 또한 대만 기업에게 제공됐던 각종 세제 혜택도 철폐했다. 이는 중소기업이 위주인 대만에게 상당히 불리하다. 마침 아세안이 경제통합이 가속화해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출범시켜 하나의 시장이 됐다. 차이 총통도 과거와 달리 각종 지원책을 내놓으며 기업의 동남아 및 서남아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 한국도 중국 정부에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보복을 당한 뒤 신남향정책을 주목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단시일 내 공장을 중국에서 동남아와 서남아로 옮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국제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고 차이 총통의 의지가 워낙 강력한데다가 대만 기업의 직면한 현실 때문에 신남향정책이 성공하리라고 본다. 올해 들어 대동남아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이는 대만 기업이 값싼 노동력과 새로운 시장을 찾아 베트남·인도네시아·미얀마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만 정부와 기업은 떠오르는 인구대국인 인도에 주목하고 있다. 인도는 정치적으로 중국과 라이벌인데다, 경제적으로는 ICT산업에서 대만과 협력할 분야가 많다. 신남향정책이 과거와 달리 투자·협력 대상을 동남아에 국한시키지 않고 서남아와 호주, 뉴질랜드까지 포함시킨 것은 그들 국가가 모두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시장이기 때문이다."

- 국민당의 지지율이 지난해 동시선거 이후 좀처럼 오르질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차이 총통을 위시한 민진당 지도부는 선조가 명·청대에 대만으로 건너온 본성인(本省人) 출신이다. 이들은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이에 반해 국민당은 2차대전 이후 중국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과 본성인이 뒤섞여 6개의 이질적인 정파가 치열한 권력다툼 중이다. 대만의 젊은 세대는 외성인들의 친중 행보에 대한 반감이 아주 크다. 게다가 한국처럼 보수정파가 집안싸움에 몰두해 있어, 차이 총통의 국정지지율에 관련 없이 국민당에 대한 지지가 민진당을 넘어서질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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