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관치금융의 병폐 '카드 수수료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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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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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전운 기자 = 2011년 미국은 직불카드 수수료를 건당 21센트로 제한하고 정산수수료율을 결제액 대비 0.05% 이하로 못 박는 내용이 담긴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개정안을 시행한 바 있다.

카드발급은행의 이익을 줄여 소비자와 가맹점의 혜택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수익이 떨어진 은행이 고객혜택을 축소하고 직불카드 발급을 줄이자 소비자는 카드를 해지하는 등 이 시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도드-프랭크법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의 비용부담을 덜어 일자리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카드수수료 인하 방책을 꺼내들었지만,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오히려 카드회원의 혜택만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카드업계는 연간 3500억~5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만큼 카드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수익 대비 비용이 높은 상품·서비스를 내놓을 수 없는 데다 금융판매(현금서비스·카드론) 수익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이에 따라 회원 부가서비스 축소, 연회비 인상 등의 조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카드사 수수료가 거듭 인하되면서 8개 전업 카드사의 당기순이익은 2015년(2조300억원)보다 7% 가까이 줄어든 1조8900억원에 그쳤다. 2013년(1조7000억원) 이후 3년 만에 업계 당기순익이 1조원대로 떨어진 것이다. 카드 이용액이 지난해 역대 최고치(553조6000억원)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카드사들은 고객 혜택을 대폭 강화했던 상품들의 신규 발급을 대거 중단했다. 그 뿐만 아니라 무이자 할부 행사 등 ‘이벤트성 서비스’를 줄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카드 부가서비스 유지 의무 조항을 현재 3년에서 1년으로 줄여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같은 부작용이 정치권의 이벤트성 공약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카드수수료는 모두 9차례나 내려갔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표를 얻기 위한 손쉬운 방법의 하나로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주요 후보 모두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신용카드 수수료율이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시장원리에 어긋날 뿐아니라 그 자체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신용카드와 관련해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 집행이 아니라 선거공약 이행을 위한 임시방편적 정책이 남발되고, 이는 꿰맞추기 방식의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번 수수료 개편으로 우대 수수료 적용대상이 대다수가 되는 기형적 구조가 탄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임시방편적인 정책은 사실상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있다. 카드 수수료 개편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자영업자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최근 여신금융협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영세가맹점 500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영세가맹점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경기침체(57.2%)와 임대료(15.8%)를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맹점수수료 때문에 힘들다고 답한 비율은 2.6%에 불과했다.

이번 카드수수료 개편으로 한달에 6만~7만원 정도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자영업자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건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로 경기 침체에다 과당경쟁으로 신음하는 중소 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카드업계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상 금융시장의 경쟁 원리는 무시한 채 문제를 ‘관치 금융’으로 해결하려는 오래된 병폐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룰을 만들고 시장 질서가 유지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관치 금융으로 인한 부작용이 기업과 소비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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