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옥빈, 뉴 타입 '악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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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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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녀에서 숙희역을 열연한 배우 김옥빈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드디어 오고 말았다. 사정없이 부수고 상대를 제압해나가는 여자 주인공 말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액션 영화의 등장에 국내외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악녀’(감독 정병길)는 살인 병기로 길러진 한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 자신의 정체를 절대 드러내지 말아야 할 세 사람의 비밀과 복수를 그린 액션물이다. 배우 김옥빈(30)은 이번 작품에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킬러 숙희 역을 맡았다.

숙희는 어린 시절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고 최정예 킬러로 길러진 인물.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국가의 비밀 조직 요원이 돼 이름도 신분도 숨긴 채 가짜의 삶을 살아간다.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께 ‘이거 투자돼요?’라고 물었어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여배우의 위치가 얼마나 축소돼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죠.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액션 영화가 기획된다는 게 믿기질 않았거든요.”

영화 악녀에서 숙희역을 열연한 배우 김옥빈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김옥빈의 말은 사실이다.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중심의 영화는 장르 불문, 기획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거기에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액션 영화에 여성이 주인공을 맡다니. 제안을 받은 배우까지도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병길 감독은 자신의 뚝심을 밀어붙였고 김옥빈 역시 정 감독의 뚝심을 실현 시키려 노력했다.

“가장 초점을 맞춘 건 역시 액션이었어요. 처음 액션스쿨을 가던 때가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숙련이 됐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어설펐거든요. 하하하. 주먹질에 칼질까지 너무 어색했었어요. 그런 몇 달 지나니 몸에 익더라고요. 그 과정을 기록하면서 열심히 연습했죠. 다양하게 합을 맞추면서 몸에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힘을 주지 않되 세게 보이도록 하는 액션을 연습했어요.”

김옥빈은 액션의 95% 이상을 직접 촬영했다고 밝혔다. 얼굴 위로 자신만만함이 떠올랐다. “목숨을 걸고 찍었다”는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 ‘악녀’ 속 액션은 수위가 높았다.

“처음에 텍스트상으로는 액션 디자인이 이해가 안 갔어요.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알겠지만 카메라 앵글이나 스타일은 구상이 안 되더라고요. 액션마다 스타일이 워낙 다르셔서. 오프닝 액션부터 장검 액션, 오토바이 액션, 한복 비녀 액션 등 다 다르니까요.”

영화 악녀에서 숙희역을 열연한 배우 김옥빈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텍스트 속 액션을 화면으로 구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액션을 만들었고 결과물 역시 훌륭했다.

“아쉬운 점은 제 액션을 풀샷으로 찍어주지 않은 점? 하하하.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멀리서 찍어줬으면 좋겠는데 많이 안 담겼더라고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제가 했는데. 하하하.”

하지만 단순히 액션을 익히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액션에 감정이 실리며” 지금까지와는 완벽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점이 힘들었어요. 연습할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죠. 촬영할 땐 액션에도 감정이 실리고 제 몸에도 힘이 들어가니까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점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열심히 노력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계속해서 합을 짜고, 익히는 과정을 겪었죠.”

작은 부상들은 일상처럼 느껴졌다. “안 다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에, 큰 부상은 겪지 않았지만 멍들고 피가 나는 건 예삿일이었다. 김옥빈을 비롯해 배우들, 제작진까지 파스 냄새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김옥빈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액션의 강도나 부상이 아니었다.

“딸 은혜와의 감정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시나리오만 읽었을 땐 주된 감정이 멜로라고 생각해 아이와의 감정을 쏙 빼놓고 생각했었거든요. 현수와 중상과의 관계에만 치중돼 있었어요. 처음 은혜를 만나는 신에서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어요. 아이와 말하고 연기하는데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아이를 낳지 않은 저도 그런데 아이를 낳은 분들은 오죽하겠어요? 모성애적인 부분을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숙희가 움직이는 동기가 은혜인 것, 그 감정을 더 짚어주고자 했어요.”

영화 '악녀' 스틸컷 중, 숙희 역을 맡은 배우 김옥빈[사진=NEW 제공]


배우의 입장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이해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했다. 김옥빈이 정병길 감독에게 감정선을 짚어주자고 요구한 것도 (배우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병길 감독님은 그런 걸 싫어하셔서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숙희가 죽으면 은혜가 혼자 남겨지니까 그런 걸 짚어달라고 사정도 하고…. 하하하. 액션 앞에 동기나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결과적으로는 액션적으로나 드라마적인 부분으로나 감독님이 맞춘 틀을 최대한 다 구현하고 맞춰드리려고 했어요.”

김옥빈은 “숙희와 나는 매우 다르다”고 표현했다. 수동적인 숙희의 성격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숙희와의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고 한 걸음씩 그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숙희는 삭제된 감정이 많아서 하나로 잇는 게 힘들었어요. 이건 액션과는 다른 고통이었죠. 사실 숙희가 가진 감정이 이해가 잘 안 갔거든요.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살육을 하고 큰 트라우마를 겪은 것 치고는 감정이 너무나도 순수한 거예요. 표현에 있어서 일치가 안 된다고 얘기했었어요. 이걸 소화하는 것에 있어서 일치가 안 되기 때문에 연기할 때도 몸이 굳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의 논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복수의 동기가 아니라 잊고 싶고, 잊으려 노력하는구나.’ 대사에서 힌트를 얻고 저만의 이유를 만들려고 했어요.”

여성 주인공이 펼치는 액션과 핏빛 복수극을 다뤘다는 점 때문에 영화 ‘악녀’는 ‘니키타’, ‘킬 빌’ 등 다양한 작품과 비교되곤 했다.

영화 악녀에서 숙희역을 열연한 배우 김옥빈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참고한 레퍼런스요? 많죠. 오히려 참고를 많이 했어요. ‘니키타’, ‘루시’, ‘롱키스 굿나잇’, ‘한나’, ‘원티드’ 등등. 성향적으로는 ‘한나’가 제일 비슷했던 것 같아요. 보통 여성이 칼을 들었다, 주먹 좀 쓴다 하면 무조건 봤어요. 다른 여성들은 어떤 액션을 취할까, 어떤 느낌일까. 열심히 찾아봤고 그들의 동기를 들여다봤죠.”

치열한 노력 끝에 김옥빈은 영화 ‘악녀’로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게 됐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지 딱 8년 만이었다.

“기분 좋았어요. 시각적, 문화적 차이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다들 좋은 반응을 보내주셔서 신기하기만 하더라고요. 고생했는데 좋게 봐주시고 칭찬도 해주셔서 보람돼요. 보상받는 기분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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