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세종 탄신 620돌…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되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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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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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민 국립한글박물관장

[사진=김철민 국립한글박물관장]


많은 사람들이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만 알고 있지만, 오늘은 세종(世宗) 탄신 620돌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인데, 1443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민족의 말을 적을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 이외에도 몇 가지 점에서 매우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훈민정음은 한문으로 소통하던 지식층과 한문으로는 소통할 방법이 없었던 일반 대중의 정보 장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쉽고 전달력 빠른 정보 소통 수단이었다. 오늘날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의 세상으로 연결하며 정보 혁명을 이룩했듯이, 훈민정음은 당시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의사소통 방법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을 사랑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문을 '진서(眞書)'라고 하며 떠받들던 조선시대였기에 세종의 시도는 더욱 유의미하다. 

훈민정음은 왕조실록을 편찬한 우리 민족의 치밀함을 그대로 반영해 훈민정음을 만든 사람, 목적, 창제 원리, 사용 방법 등을 자세하게 담고 있는 공식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과 함께 만들어졌다. 이는 다른 문자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유네스코에서도 이를 인정해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이 책은 새로운 문자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목적과 함께 새로운 문자가 어떤 철학과 원리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가장 자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훈민정음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성리학의 음양오행 철학을 바탕으로 중국 성운(聲韻)학과 우리말의 소리를 심도있게 고려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훈민정음해례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리학, 중국 성운학, 한문학, 언어학, 문자학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훈민정음은 복잡한 성리학의 음양오행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글자를 만들 때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기본 글자를 만들고 이를 기본으로 다시 두세 차례 기본 글자를 결합한 다음 이를 다시 음절 단위로 모아 쓰게 했다. 그 결과 기본 자음 5자와 기본 모음 3자만 익히면 나머지 글자도 체계적인 원리에 따라 쉽게 익힐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체계를 갖추게 됐다.

이는 현재의 한글이 갖고 있는 확장성, 즉 24자의 기본 자음과 모음으로 1만1172개의 글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산업사회가 가속화할수록 훈민정음이 그 활용성과 응용력이 더 높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제레미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인 석학들은 한글의 이러한 특징을 일찌감치 간파해 '그간 한국이 이루어냈던 경제 발전의 밑거름엔 한글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 시카고대의 매컬리 교수도 한글의 과학성과 수학적 체계성에 매료된 나머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직접 나섰으며, 생전 20여년간 동료들과 함께 한글날을 기념하곤 했다.

현대 사회는 날이 갈수록 이질적인 분야와의 융합을 요구하고 있고 생산성에 기반한 사회 체제는 빠른 소통과 과학적 경제성을 원하고 있다. 세종이 15세기에 추구했던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세종이 추구했던 새로운 문자는 본질적으로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인접 분야와의 융합과 조화를 이루려 했고 내적으로는 과학적·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고자 했다.

세종 탄신 620돌을 맞아 한글을 매개로 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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