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렁이' 오예설 "촬영 내내 '멘붕'…성장할 수 있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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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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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렁이'에서 자야 역을 열연한 배우 오예설이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찰나 같았다. 밝고 건강했던 자야가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야의 커다란 눈에 드리워지는 공포는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를 연기한 배우 오예설(24)을 힘들게 했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영화 ‘지렁이’는 청소년 성범죄의 피해를 본 딸 ‘자야’(오예설 분)와 아버지 ‘원술’(김정균 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오예설은 청소년 성범죄의 피해자 자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힘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현장은 더 지독했다. 자야를 향한 비난과 폭력은 도를 넘어섰고, 그를 부정해야 간신히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밝고 긍정적인 배우 오예설에게도 타격이감이 큰 역이었다.

영화 '지렁이'에서 자야 역을 열연한 배우 오예설이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영화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만 들었다. 연기할 때 고생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쉬운 마음이 크더라. ‘더 열심히 할걸’ 후회하기도 했다.

보는 사람도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더 심했을 것 같다
- 정말 ‘멘붕’(멘탈 붕괴)이었다. 상황을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자야가 당한 일들을 이해하려고 할수록 더욱 반감이 커졌다. ‘이게 말이 돼?’ 격분하기도 했다. 실제 제 성격과 자야는 거리가 있었다. 전 당하고는 못 참는 성격이라서. 하하하. 실제 저와 자야가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우울해지고 기분도 늘 안 좋았다.

배우와 캐릭터 간의 격차가 벌어질 때가 있었나 보다. 그걸 어떻게 조율해나갔나?
- 시나리오를 계속 읽었다. 감독님과 대화도 많이 나눴고…. 촬영 전에 감독님과 면담 시간을 가졌고 학생들끼리도 자주 만나서 연습하곤 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자야에게 익숙해지려고 했다.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어땠나?
- 시나리오를 읽고 충격에 빠졌었다. 자야의 역할에 지레 겁을 먹고, 감독님께 가해자인 혜선 역을 시켜달라고 졸랐다. 감독님은 ‘왜 스포트라이트를 걷어차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셨지만…. 하하하. 덜컥 겁이 났던 것 같다. 첫 주연작인 데다가 자야를 연기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리딩 후 감독님께 한소리 들었다. ‘욕심이 없다’고 하시더라. 이후 감독님과 많은 면담을 가졌고 연습을 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촬영을 시작한 거다! 완벽히 이해하고 접근하지 못해 아쉽다.

촬영은 순차적으로 했나?
- 아니었다. 첫 촬영은 학교폭력위원회 신이었다. 가해자들의 뻔뻔한 태도에도 아버지는 쩔쩔매고 자야는 그런 모습에 크게 실망하는 장면이다. 아버지에게 ‘벌레 같이 살고 싶어?’하고 따지는데 오히려 아버지와 친하지 않아서 잘 나온 것 같다. 그게 김정균 선배님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영화 '지렁이'에서 자야 역을 열연한 배우 오예설이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저예산 영화라서 변수가 참 많았겠다. 배우로서 감정 잡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 극 중 학생 역을 맡은 친구들이 항상 촬영장을 찾아왔다. 이야기도 해주고 긴장도 풀어주면서…. 특히 민경 역을 맡은 황도원이라는 친구가 많이 도와줬다. 극 중 절친한 사이로 나오는데 (황도원이) 연기 합을 맞춰주면 감정이 잘 올라왔다. 없던 감정도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황도원과 연기 합이 좋았나보다
- 처음엔 감독님께서 ‘친해지라’고 제안하셔서 붙어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친해져서…. 하하하. 절친한 사이가 됐다. 성격도 잘 맞고 연기적으로도 잘 맞는 친구다.

연기적으로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감정을 조율할 땐 어땠나?
- 저는 감정을 터트리면 잘 추스르지 못하는 편이다. 자야를 연기하면서 우울증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내내 자야의 감정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촬영이 딱 끝나면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쉬운데 연기를 할 땐 그렇지 못하다. 감정을 조율하는 게 아직 서툴다.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감독님들이 ‘감정의 폭은 넓은데 쓸 줄을 모른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다. 감정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익히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도 이후부터는 어떤 역이든 잘 소화해낼 것 같은데
- 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렁이’를 찍고 나니 이다음부터는 뭐든 할 수 있겠다 싶다.

오예설을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 몽타주로 지나간 장면이었는데 남학생들이 자야에게 오줌을 누는 신이 있다. 영화 ‘프리즌’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는데 그건 남자끼리니까 넘어가도, 이건 피해자가 여자지 않나. 속으로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청소년 범죄 뉴스를 보면서 매번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 '지렁이'에서 자야 역을 열연한 배우 오예설이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사건 위주다 보니 극 중 자야의 전사는 많이 생략돼있다. 이런 공백은 어떻게 채웠나?
- 극 중 승우라는 친구가 자야를 두고 ‘강화사는 애한테 들었는데. 쟤 완전 물걸레래’라는 말을 한다. 그 대사를 가지고 (배우들끼리) 종일 씨름했다. 전 그게 허튼 소문이라고 생각했고 자야는 밝고 건강한 아이라고 여겼다. 대사를 하나씩 다 따져가며 전사를 만들어 놨다.

자야 캐릭터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 무너지는 단계다. 자야가 점차적으로 무너지는 것이 관객에게도 보여지길 바랐다. 촬영 전날 밥을 굶고 오기도 했다. 감정적, 외형적으로도 단계별로 조절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케미스트리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김정균 선배님께 아빠라고 부르며 편해지려고 했다.

이 작품으로 많이 성장한 듯한 느낌이 든다
- 이 작품으로 많이 배웠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도 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배우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많이 배운 것 같다. 영화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후회가 들고, 힘들었는데 찍고 나니까 많이 배우고, 깨달았었구나 싶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나고 나면 한 단계 성숙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지렁이'에서 자야 역을 열연한 배우 오예설이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렁이’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
-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녀에게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면서 ‘원술이 자야에게 한 마디만 해줬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부모님의 관심이 절실하다.

반대로 ‘지렁이’는 오예설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 성장할 수 있는 작품. 신인이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결과물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이걸 계기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런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다시 만날 때까지 약속 한 가지를 한다면?
- 발랄한 역할로 다시 뵙겠다. 저는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의 보라 같은 역을 꼭 해보고 싶다. 밝고 발랄한 역할에 대한 갈망이 있다. 제 성격에도 잘 맞고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보는 분들도 기분 좋아질 만큼의 캐릭터를 만나, 다시 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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