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대선후보의 꽉 막힌 일자리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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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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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며칠 전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경영학계 석학, 헤르만 지몬이 쓴 ‘히든 챔피언’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보았다. 히든 챔피언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이 1~3위를 차지하고, 매출액이 40억 달러 이하이면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을 정의하는 말이다.

풍력발전회사 '에네르콘', 개 목줄을 만드는 '플렉시' 등 세계시장 점유율 50~70%를 넘나드는 중소·중견기업들이 바로 대표적인 히든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이 별로 없는 독일이 세계 수출시장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것은 바로 이러한 히든 챔피언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5·9 장미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도 바쁘다. 헌정 사상 최초의 스탠딩 TV토론을 비롯해 각종 간담회와 유세 등에 나서느라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판이다.

최근 한 유력 대선후보도 경제단체 임원들을 초청, 간담회를 열었다. 그동안 재벌 개혁을 강조하고 노동계 목소리를 비중있게 들어온 그였기에 관심이 갔다. '반(反)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외연 확장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듯했다. 그 자리에는 국내 대표 경제단체의 임원들이 모두 참석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다. 다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낙인이 찍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마땅히 함께 자리해야 할 115만 중견기업인을 대표하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보이지 않았다. 중견기업은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허리’ 역할을 한다. 이들이 히든 챔피언이자 후보들이다. 2015년 기준 중견기업의 수는 3558개사로 전체 기업의 0.1% 수준에 불과하나 국내 고용률의 5.5%인 115만3000명을 책임지고 있다. 매출은 620조원으로 전체 기업의 17.3%, 법인세 납부액은 5분의1 가량을 차지한다.

대선 후보들이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문재인·안철수 두 유력 대선 후보는 '근로시간 연간 1800시간,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공약을 내놓았다. 경총과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건비 증가폭은 무려 23.5%에 달한다. 휴일근로 중복 할증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은 8조6000억원 늘어난다. 여기에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올라가면 적용 첫해에만 5조7000억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한다.

노조가 힘있는 대기업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새로운 근로자를 채용하는 게 아니라 기존 인력의 추가 근무수당을 늘리는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늘어나는 비용 부담을 견디기 힘들다. 도산 위기로 내몰릴 가능성도 높다.

각 대선 후보들은 나름대로 야심 찬 공약을 내걸고 있다.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그런 거대 담론성 공약들이다. 국민들은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 갈수록 하루하루 생활이 힘들어지고 있어서다. 젊은이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넘쳐나는 세상, 정년퇴임 후에도 재취업이 가능해 노후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세상, 기업들이 정부 규제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을 국민들은 간절히 바란다.

해법은 단순하다. 서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복지 수준을 높여주면 된다. 일자리는 기업들이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반년 이상 주요 대기업들은 총수가 구속수감되거나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는 등 크게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중견·중소기업들을 옥죄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들만 넘쳐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는 최근 저성장·고실업 구도가 고착화되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중견기업이 독일 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히든 챔피언인 것처럼 한국 경제에서도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옭아매는 각종 규제들을 혁파하고 프랑스, 대만 등 여타 국가들처럼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프랑스는 내수의존형 경제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글로벌 마케팅 지원사업 대상을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확대했다. 대만 정부도 위탁생산을 위주로 하는 자국 기업들이 제조기술은 뛰어나지만 핵심기술이 부족하다는 인식 하에 매년 중점 지원대상 기업 50개사를 선정해 인력육성 지원, 기술개발자금 지원 등 맞춤형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검찰에 구속된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했다.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어떤 대통령 후보가 난국의 상황을 극복하고 국민 행복 그리고 국가 발전의 시대를 열어줄까에 맞춰져 있다. 대선주자들은 그 답을 중소·중견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국민경제의 활력을 찾는 데서 찾길 바란다.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js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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