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민중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러시아 관료들의 근대 한국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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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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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학중앙연구원, '러시아의 시선에 비친 근대 한국' 발간

'러시아의 시선에 비친 근대 한국'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조선 여인의 침묵은 실로 그네들의 굳센 용기에서 비롯한 것임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비로소 참된 조선 여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성왕후가 시해되던 날 서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현장에 있던 러시아의 건축가 A. 세레딘 사바틴은 일본인들의 만행에도 한 치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던 궁녀들에 대해 이같이 술회했다. 

사바틴은 끔찍했던 당시의 사건 전말을 이렇게 기록하기도 했다. "그곳에는 신식 조선군 소대가 세워총 자세로 대열을 갖추고 있었으며, 왕비의 처소 내 궁녀들이 있던 방에서는 일본 기모노와 유럽 복장의 약 20~25명의 일본인들이 무섭게 고함을 질러 대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이 일본인들은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녔다."

이처럼 한국 근대사 격동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러시아인들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책이 발간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원장 이기동)은 '번역총서' 시리즈 중 6번째 권인 '러시아의 시선에 비친 근대 한국'을 펴냈다고 22일 밝혔다. 

이 책은 러시아어 원서 'Корея Глазами Россиян'(2008)를 번역한 것으로,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 동안 한반도를 방문한 러시아 사람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책에 수록된 자료들은 조선에 파견된 러시아 관료들의 공식 외교문서를 비롯해 각종 보고서, 기사, 편지, 기행문 등 다양하다. 

러시아는 1884년 여름에 이르러서야 한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국가이다. 이 책에는 동아시아의 변방이자 낯선 곳 '조선'을 바라보는 러시아 외교관과 여행자의 독특한 심상들이 실려 있다. 한중연 측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저널리스트의 글이나 외교적 난국의 돌파를 위해, 일본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아관파천까지 감행해야 했던 고종 황제의 번민을 전한 러시아 외교관의 보고서들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것이어서 실증적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했다. 

또 이 책에는 당시 조선에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체류하던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도 기술돼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근대 조선의 문물을 소개하는 다양한 자료들은 당대의 암울하고 뼈아픈 사회적 상황을 방증한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러시아인들이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 끼어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야 했던 조선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따뜻하게 바라봤다는 점이다. 1898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두만강, 백두산, 압록강을 거쳐 일본까지 여행한 가린-미하일로프스키는 자신의 여행기에서 조선 사람들을 "예의가 바르고 교육을 잘 받았"으며 "낯선 사람들에게도 붙임성이 좋았고 아주 섬세한 사람들"이라고 기록했다. 1900년 조선을 여행한 P. U. 시미트 교수 역시 "그야말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가난"했지만 어떤 점에서는 "아주 행복해 보인다"고 적었다. 

한중연 관계자는 "러시아는 한반도와 경계를 맞댄 인접국이지만, 그동안 우리는 러시아에 대한 이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했던 감이 없지 않다"며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 이번 번역서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520쪽 | 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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