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 할 이유 없지"…한국계 佛 장관 플라세 자서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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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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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뱅상 플라세 국가개혁담당 장관, 7세 때인 1975년 입양…한국과 '화해' 심정 담아

장 뱅상 플라세 프랑스 국가개혁·간소화 담당 장관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장 뱅상 플라세 프랑스 국가개혁·간소화 담당 장관(한국 이름 권오복·49)의 자서전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플라세 장관은 경기도 수원의 한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7세 때인 1975년 7월 프랑스로 입양됐다. 그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아래서 4남1녀 중 막내로 자라면서 "추기경 아니면 장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키웠다. 

경제학 전공으로 학·석사를 마쳤고, 박사과정 때 은행법을 전공해 민간회사 재무감사로 근무하며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좌파급진당 국회의원인 미셸 크레포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녹색당에서는 의원연수원 원장을 맡는 등 좌파 진영의 '협상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2011년 녹색당 소속으로 파리 근교 에손(Essone)도의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지난해 2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행정 간소화와 전산첨단화를 주도할 적임자로 발탁됐다. 
 

'뿌르꾸아 빠 무아' [사진=리에종 제공]


그가 내놓은 자서전 제목은 '뿌르꾸아 빠 무아!'(Pourquoi pas moi)로, '내가 못 할 이유는 없지'라는 뜻이다.

플라세 장관은 '장난감 상자 크기만 한 밤색 가방'을 메고 비행기에서 내려 노르망디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을 때부터 장관이 되기 직전까지 자신이 받은 교육, 정치입문과 활동 등 지나온 길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어린 시절 한국의 기억을 애써 지우려 했던 그는 "다소 무의식적으로 한국과 거리를 두었다. 나 자신을 형성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알려 하지 않았다.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2011년 그가 상원의원이 된 뒤의 일이었고, 한국 음식을 다시 먹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선과 악의 개념을 각각 프랑스와 한국에 대입했을 것"이라면서도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나의 시원(始原)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며 한국과의 '화해'를 시사했다.  

플라세 장관은 에필로그에서 "마음속에 원한 같은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는, 아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나의 가족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나에게 이토록 많은 것을 베풀어 준 프랑스에 대해서도 그렇다. 특히 나는 공화국의 학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을 '낙천주의자'로 여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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