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 금융위기 예방주사 궈수칭, 마지막 주룽지맨 '기대한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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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2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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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의 대도시나 지방도시에서 텅 빈 아파트단지나 건설이 중단된 채 을씨년스런 주택들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직도 '유령도시(구이청, 鬼城)'라 불리는 곳들은 중국 당국의 골치를 썪인다. 철강과 석탄 등 대표적인 공급과잉 업종에서는 생산능력 축소작업이 한창이다. 잘 돌아가던 공장이 하나둘 폐쇄되고 있는 것. 이 밖에 노후산업군에서는 정부주도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다. 주택건설이나 대규모 장치산업은 막대한 은행대출을 수반한다. 상황이 이지경이라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급증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4분기말 중국 당국이 발표한 상업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1.74%다. 전년대비 높아지긴 했으나, 그야말로 양호한 수치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발표치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은행 같았으면 벌써 부실채권으로 분류돼 막대한 충당금을 쌓아야 할 대출채권들이 중국에서는 정상여신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을 15%선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더해 중국 시중은행들의 수익률마저 낮아지고 있다. 수익률이 높다면 부실채권에 대한 대응여력 역시 높아진다. 지난해 중국 상업은행의 수익증가율은 3.54%로 전년대비 1.11%P 낮아졌다. 과거 중국 당국은 예대마진을 보장해줘 은행의 수익률을 높게 유지토록 했지만, 이제는 금리자유화 조치가 진행중이다. 금리자유화 방침은 거스를 수 없는 만큼 중국 은행들의 수익률 역시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부실채권 급증은 금융부실을 낳고, 이는 자칫 전체 중국경제를 휘청이게 한다. 중국에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구문이다. 중국 당국은 소방수로 대표적인 개혁파 테크노크라트인 궈수칭(郭樹清)을 임명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개혁신념 전문가, 시장기대감 높아

산둥(山東)성 성장으로 일하던 궈수칭은 지난 23일 저녁 7시30분 산둥성의 성회인 지난(濟南)시에서 고속철을 타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다음날인 24일 아침 8시40분, 궈수칭은 베이징 금융가 15호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 본청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9시에 은감회 주요간부와 대형은행 책임자들이 모인가운데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는 새로운 은감회 주석으로 궈수칭이 임명됐음을 선포했다. 궈수칭은 전임 은감회 주석이자 오랜 친구인 상푸린(尚福林)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간단한 취임식을 마친후 궈수칭은 "금융계로 다시 돌아와 매우 기쁘다"며 은감회 간부들에게 "건의할 것이 있다면 2000자 이내로 정리해서 내게 제출해 달라"고 당부했다. 

궈수칭의 은감회 주석 취임에 대해 시장은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각 매체들은 궈 주석을 개혁적인 금융전문관료라고 평가하며 지난 30년동안 중국의 경제개혁을 이끌어온 인물이라고 조명했다. 또한 그가 산둥성 성장으로 4년동안 근무한 기간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들도 쏟아져나왔다. 중국경제망 등 중국내 경제지들은 궈 주석이 강력한 금융권 개혁을 주도해나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궈수칭에 대한 높은 신뢰감을 알 수 있다.
 

궈수칭 은감회 주석.[사진=바이두캡쳐]


◆주룽지 군단 막내

1956년8월 네이멍구 우란차부(烏蘭察布)에서 태어난 궈수칭은 문화대혁명이 종료된 후인 1978년 22세의 나이로 톈진(天津)의 난카이(南開)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1982년 졸업후 궈수칭은 경제학도로 변신해 인민대학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비교사회주의체제(사회주의경제학)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후 그는 국가계획위원회(지금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 배치받았다. 배치초기 그는 개혁파 원로 경제학자인 우징롄(吴敬琏) 교수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 프로젝트팀에서 궈수칭과 함께 작업했던 이로는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 러우지웨이(樓繼偉) 전 재정부장, 리젠거(李劍閣)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회장 등이 었다. 프로젝트팀은 1988년 '중국경제체제개혁전체로드맵' 보고서를 완성했고, 이 작업에 깊이 관여했던 궈수칭은 소장파 개혁주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6년 40세의 궈수칭은 국가체제개혁위원회 비서장에 올랐다. 이 시기 당시 건설은행장이었으며 금융관료로 두각을 드러내던 왕치산(王岐山) 현 중앙기율위 서기와 두터운 교분을 쌓게 됐으며, 명실공히 주룽지(朱鎔基) 사단의 일원으로 칭해지게 된다. 주룽지 사단으로는 왕치산 기율위 서기를 비롯해 저우샤오촨, 러우지웨이, 상푸린, 리젠거, 샹쥔보(項俊波) 보감위 주석 등이 꼽힌다.

◆궈수칭의 작품, 국유은행 상장

10여년을 국가체제개혁위원회에서 일한 뒤 1998년 구이저우(貴州)성 부성장을 거쳐 2001년에는 인민은행 부행장 겸 외환관리국 국장으로 발탁됐다.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은 가파른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이를 뒷받침할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낙후한 상황이었다. 국유은행들은 국가의 재원에 의존했고, 국가의 정책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정부가 투자를 지시하면 은행은 대출을 실행할 따름이었다. 이는 효율적인 자원배분과는 거리가 멀다.

궈수칭이 이끄는 외환관리국은 2003년 12월 중앙후이진(匯金)투자유한책임공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상 외환관리국내의 한 부서였다. 궈수칭이 중양후이진 회장을 겸임했다. 그리고 2004년1월6일 국무원은 중국은행과 건설은행의 지분개혁시범은행으로 지정했다는 발표문을 냈다. 경천동지할 소식으로, '국유은행 상장'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국유은행은 시스템이 낙후했으며, 회계가 투명하지 못했고, 부실채권이 눈더미처럼 쌓여있었다. 2004년말 기준으로 중국은행의 불량채권률은 5.12%, 건설은행은 3.7%였다. 그 상태로는 상장이 불가능했고, 상장이 불가능하면 대규모 자금유치도 금융선진화도 불가능했다.
 

궈수칭 은감회 주석(가운데 손짓하는 남성)이 지난 23일 산둥성 지난남역에서 베이징행 고속철에 오르고 있다.[사진=상하이증권보캡쳐]


◆”중국금융 낙후했다” 입버릇 개혁독려

중양후이진은 외환보유고 450억달러를 끌어와 중국은행과 건설은행에 투입해 자본건전화를 이뤄냈고, 이사회, 감사회, 사외이사제를 도입시켰다. 리스크관리를 강화했고 관련 전문인력을 대거 끌어들였다.

상장작업이 순항중이던 2005년 3월, 당시 건설은행 장언자오(張恩照) 회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건설은행 상장작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다급한 중국 당국은 시장의 신뢰가 높은 궈수칭을 소방수로 삼아, 건설은행 회장에 취임케 했다. 그리고 7개월 후 건설은행은 홍콩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됐다. 국유은행 최초의 증시상장이었다. 이후 중국 은행들의 상장이 줄을 이었다.

은행장으로서 그는 공식석상에서 "은행 뿐 아니라 중국 금융산업 전반의 서비스는 심각하게 낙후돼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개혁을 독려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키 위해 중국 당국이 4조위안 부양책을 내놓았고, 각 은행들은 기업대출에 열을 올렸을 때 궈수칭은 "지금같은 시기에는 오히려 대출확대에 보수적으로 대응해야한다"며 리스크관리를 강조했다.

◆”일주일에 반나절밖에 못쉰다”

2011년 궈수칭은 증권감독위원회 주석에 올랐다. 그의 전임자는 은감위 전임 주석인 상푸린이었다. 궈수칭이 증감위 주석에 오른 후 주식시장 자유화 조치들이 단행됐다. 시장은 과감한 개혁론자인 궈수칭에 열광했다. 2013년 3월말 궈수칭은 증감회 주석에서 산둥성장으로 이동해갔다. 산둥성은 중국 31곳 지역 중 GDP규모로 광둥(廣東)성, 장쑤(江蘇)성에 이어 3위다. 전국 GDP의 10%가량을 차지하지만 금융자산규모는 전국의 7%에 못미쳤었다. 제조업 경쟁력이 강하지만 금융경쟁력이 취약했다.

궈수칭은 산둥성장 취임 131일만에 산둥성 금융개혁 22조를 내놓고는 산둥성 금융산업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2013년에만 30여명의 베이징 금융간부들을 산둥성 정부에서 일하도록 했으며, 동시에 34명의 산둥성 간부를 베이징 금융당국에서 근무토록했다. 이어 산둥성 각 시에 금융부시장을 파견해 지역금융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3년 산둥성 GDP에서 금융산업은 4.14%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 이 비율은 5%를 넘어섰다.

그가 성장을 맡은 이후 산둥성 기업들의 상장도 봇물을 이뤘다. 지난해에만 17곳의 지역기업이 상장됐다. 산둥성장 당시 궈수칭은 "증감위에서 일할 때는 일주일에 하루는 쉬었지만, 산둥성에 와서는 일주일에 반나절밖에 쉬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궈수칭 은감회 주석[사진=바이두캡쳐]


◆취미는 설거지, 부인은 캠퍼스커플

궈수칭은 2014년부터 인민은행장으로 자리이동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직도 중국 인터넷상에는 당시 돌아다니던 소문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금융계는 ‘궈수칭 인민은행 행장’이라는 기대감에 술렁였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궈수칭이 산둥성 서기에 올라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주로 산둥성 공무원들 사이에서 퍼져나온 소식이었지만, 베이징의 중국공산당 관계자들은 “궈수칭은 전국적인 인물이라 지방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건설은행장 시절 한 기자간담회에서 취미로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간단히 "설겆이를 합니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설겆이는 아주 유용한 식후운동이며, 식사후 곧이은 설겆이는 물을 아끼고 전기를 아낄 수 있다. 나는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면 항상 설겆이를 한다"고 대답하는 재치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부인 왕잉(王颖)은 베이징 출신으로, 궈수칭과 난카이대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부부에게는결혼한 딸이 한명 있다.




*주요이력:
1956년 8월 네이멍구 우란차부(烏蘭察布) 출생
1978~1982 난카이(南開)대학 철학과
1982~1985 인민대학 경제학과 석사
1985~1988 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1988~1993 국가계획위원회 연구센터 부조장
1993~1996 국가체제개혁위원회 종합사(司) 사장
1996~1998 국가체제개혁위원회 비서장
1998~2001 구이저우(貴州)성 부성장
2001~2005 중국인민은행 부행장, 외환관리국 국장
2005~2011 중국건설은행 회장
2011~2013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2013~2017 산둥성 성장
2017~ 중국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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