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학살 책임자 송요찬 선양사업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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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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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요찬 선양사업 "제주4·3희생자들에 대한 모독"

▲4.3희생자 묘비를 찾고 있는 백발의 4.3유족


아주경제 진순현 기자= 제주4·3사건 당시 9연대장 출신인 송요찬에 대한 선양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1948년 10월부터 제주도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을 벗어난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소개령을 발표한 후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제주4·3연구소는 24일 성명을 내고 “충남 청양군은 제주4·3 학살 책임자 송요찬 선양사업을 중단하라”고 날을 세웠다.

청양군은 제주4·3 학살 책임자 송요찬에 대해 ‘6·25전쟁 영웅’ 선양사업을 한다며 다음달 ‘송요찬 장군 선양사업 범군민 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11월 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를 열었고, 국가보훈처와 충청남도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주4·3연구소는 정부가 펴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나온 내용들을 들어 송요찬에 대한 평가를 청양군에 요구하고 나섰다.

제주4·3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송요찬은 서북청년회를 주목했다. 강경진압작전의 핵심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는 서청 단원들을 군에 편입시켜 이른바 ‘특별중대’를 만들었다. 계급장도 없는 ‘군인 아닌 군인’이었지만 9연대 헌병이나 장교들도 간섭하지 못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해 제주4.3연구소는 “4·3당시 제주를 무참히 짓밟은 서북청년회의 만행은 송요찬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며 “그 이유는 송요찬이 그러한 권한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9연대 선임하사 출신은 “송요찬 연대장은 초토화작전을 폈다. 거처 가능한 곳을 없애라, 또는 불태워 버리라고 했는데 이런 건 육지에서도 없었다. 초토화작전이 상부의 지시인지 또는 연대장 독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송요찬 연대장은 일본군 출신으로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9연대 송요찬 연대장은 1948년 10월 17일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진압작전이 전개됐다. 이와 관련 미군 정보보고서는 “9연대는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다”고 적고 있다.

4·3진상보고서는 계엄령 선포 이후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중산간지대 뿐만 아니라 해안변 마을에 소개한 주민들까지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그 결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입산하는 피난민이 더욱 늘었고, 이들은 추운 겨울을 한라산 속에서 숨어 다니다 잡히면 사살되거나 형무소 등지로 보내졌다. 심지어 진압 군경은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 그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을 자행했다”고 당시 참혹한 실상을 밝히고 있다.

또 송요찬의 9연대는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키는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다.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4·3사건으로 가옥 3만9285동이 소각되었는데, 대부분 이때 방화됐다. 결국 이 강경진압작전은 생활의 터전을 잃은 중산간마을 주민 2만명 가량을 산으로 내모는 결과를 빚었다. 이 무렵 무장대의 습격으로 민가가 불타고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사건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피해마을은 세화, 성읍, 남원으로 주민 30~50명씩 희생됐다.

4·3연구소는 “이처럼 정부의 보고서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제주4·3사건 당시 제주도민들의 학살에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며 “그런 그를 자치단체가 6·25전쟁 영웅이라며 선양사업을 벌이고, 정부 부처와 지방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제주4·3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즉 4·3진상조사보고서는 결론을 통해 제주도 진압 책임자였던 송요찬에게 제주4·3학살의 1차적 책임을 묻고 있다.

또한 송요찬은 한국전쟁 당시 형무소 수감자들을 아무런 적법절차 없이 처형했다는 도마에 올랐다. 당시 헌병사령관이었던 송요찬 대령은 “광주‧전주‧목포형무소에 재감중인 죄수 및 보도연맹 관계자 기타 피검자는 전국 관계장 경찰국장 형무소장 검사장과 타협 직결 처분하고 절도 기타 잡범은 가출옥 등 적당한 방법을 취할 사 각 경찰에 유치중인 피검자도 전기에 의거하여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지시에 따라 4·3사건에 관련돼 수감생활을 하던 제주도민을 비롯한 수많은 수감자들이 학살됐다.

아울러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도 지난 13일 4·3 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학살을 지시 또는 적극 수행한 인물로 송요찬의 이름을 올렸다.

4·3연구소는 “그에 대한 선양사업은 4·3 희생자와 수많은 형무소 수감자들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청양군은 제주4·3 학살 책임자 송요찬에 대한 선양사업을 중단하고, 보훈처와 충청남도는 지원사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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