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고려 무신정권에 내린 '피의 비'…무협활극 연극 ‘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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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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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혈우’ 김준 역의 김수현(왼쪽)과 최의 역의 김영민.[사진제공=M.Factoryⓒ김명집]


아주차이나 박은주 기자 =“사극 드라마 보는 줄 알았어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 소리와 함께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관객들은 서로의 감상을 나눠가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고려 무신정권 말기의 힘의 정권을 그린 연극 ‘혈우’(血雨)는 무신정권의 수장인 최항의 심복이자 고려 최고의 장수인 '김준'과 최항의 서자 '최의'의 대결로 전개된다. 

정권을 차지하려는 최의와 이에 맞서는 김준의 대결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극 중에는 최의와 그의 호위시종 '길향', 최씨 집안의 기녀 '안심'과 김준의 로맨스도 곁들여진다.  등장인물은 모두 역사 속 실존인물들이지만, 연극 속 내용은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연극 ‘혈우’ [사진제공=M.Factoryⓒ김명집]


◆파격적인 무대 연출·역동적 액션·마이크 없는 육성 공연… 다양한 볼거리로 관객 흥미↑ 

혈우는 연극 시작 전부터 독특한 연출로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10분 전부터 보초병 역할의 배우 3명이 등장해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는 참신한 도입부였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관객들 사이에서 연기를 하며 관객석 통로를 통해 무대에 올라 신선한 느낌을 줬다.

배우들이 계급에 따라 앉는 자리를 달리해 갈등을 알리며 공연은 시작됐다. 그와 동시에 공연장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와 관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혈우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모든 배우가 마이크를 달지 않고 연기를 했는데 배우들의 발성이 워낙 좋아서 504석의 대극장이 아니라 소극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2008년 연극 '방문자'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기상을 받은 김수현('김준'역), 2010년 연극 '에이미, 내 심장을 쏴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받은 김영민('최의'역) 외에도 중견배우 김종구 등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온 베테랑 연기자들이 무대에 올라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기존에 없던 무협활극을 표방하는 연극답게 액션 영화를 방불케하는 무술신이 많이 등장했다. 26명의 배우가 합(合)을 맞춰 펼치는 고난이도의 액션신들은 엄청난 연습량을 가늠케 했다. 배우들은 격렬한 맨손 액션을 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대사를 소화해 감탄을 자아냈다.

고려시대의 세계관을 살린 혈우에서는 다양한 지역 사투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들은 함경북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극 ‘혈우’ [사진제공=M.Factoryⓒ김명집]


◆ '콤플렉스'와 '정권 비판'이 관전 포인트

혈우는 단순히 액션 뿐만 아니라 극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극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인간의 자화상을 그린다.

고려 말기 무신정권의 수장 ‘최항’이 병세로 죽음을 선고받고 아들인 ‘최의’가 아닌 최고 장수 ‘김준’을 수장 자리에 앉혀 무신정권을 해체하겠다고 하자, 최의의 콤플렉스와 질투는 극에 달해 결국 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다.

최항은 무력으로 일궈낸 무신정권이 사실은 누구도 지켜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단 하나의 아들인 최의 만은 평온하게 살길 바랬다. 그러나 평생을 서자라는 뒷말을 들으며 자라온 최의는 한때 노예였지만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 장군이 된 김준을 시기질투한다.

무신정권은 최의가 아버지에게 혹은 세상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무신정권의 수장이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지독한 인정의 욕구에 시달린다. 최의는 집착스러울 정도로 김준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김준은 사랑하는 여인 ‘안심’만 있으면 정권다툼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최의는 안심을 이용해 김준을 절벽으로 몰아세우며 극의 긴장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그 과정에서 김준 역시 신분 콤플렉스를 느낀다. 엄청난 노력으로 노예에서 장군으로 신분이 올라간 김준은 자신의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자존심 때문에 괴로워한다.

두 배우는 이처럼 복잡하고 애처로운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내 관객들의 납득을 얻어냈다. 

극의 흐름은 한국의 현재 정치권 상황을 연상시킨다. 공교롭게도 무신정권을 일궈낸 가문 역시 ‘최씨 일가’이다.  

극단 M.Factory 측은 혈우에 대해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시대적 의의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도 큰 화두를 던져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연극 ‘혈우’ [사진제공=M.Factoryⓒ김명집]


◆ '산으로 간 시대 풍자극'… 러브스토리 집중 탓에 개연성 부족 단점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액션, 정치, 사랑까지 모두 한꺼번에 담으려 해 기존에 전하려던 메시지가 힘을 잃었다. 중간 부분부터 등장하는 김준과 안심의 사랑이야기는 너무 늘어졌다. 김준이 너무 사랑에만 치중하는 부분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한 여성 관객은 "현 정권에 빗댄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니 사랑 얘기가 너무 부각되서 극 흐름이 깨진 것 같아 아쉬웠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또 “김준의 사랑은 최소한으로 남겨두고 김준과 최의의 애증의 관계를 부각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극중 러브라인으로 ‘힘의 정치의 비극’이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있는 정치사극 연극이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마이크가 없어 일부 신인 배우들의 전달력이 좋지 않아 이해의 흐름을 깨기도 했다.   

혈우는 이지수 연출로 2016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분야 우수작품제작지원·2016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분야 시범공연지원 선정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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