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외감인 지정제 새 대안 '선택지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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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1-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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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수년 전 필리핀에 휴가를 갔다가 비싼 휴양지에는 경찰이 아닌 사설 경호원들이 경비를 서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공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사적 기능이 작동될 경우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일 것이다. 최근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회계분식사건의 재발로 인해 금융감독당국이 준비해 온 회계제도개혁도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지난 12일 회계투명성 종합대책방안을 이달 말에 발표한다고 공표했다. 이 가운데 ‘외부감사인 지정제도’와 관련해 ‘선택지정제’란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보증하기 위해 공인회계사를 외부감사인으로 선임해 회계감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 회계분식을 일으킨 기업에 대해서는 징벌의 하나로 외부감사인 선임권을 몰수하고 감독기관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인 ‘선택지정제’란 새로운 외부감사인 선임제도로 기업이 6년간 동일한 회계법인을 통해 외부감사를 받았다면 그 이후 3년간은 다른 회계법인으로 의무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 때 기업이 현재 외부감사인을 제외한 3개 회계법인들을 선택·제시하면 그 중 1개 회계법인을 감독기관이 선택한다. 즉,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는 방식과 감독당국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방식의 혼합된 모형이다.

장기간에 걸친 회계감사 수행으로 기업과 외부감사인 간 발생될 수 있는 유착관계를 예방하기 위한 외부감사인의무교체는 유럽에서도 시행을 결정한 사례가 있듯이 실효성 부분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더불어 이번 선택지정제를 통해 기업이 선택한 복수의 회계법인 중 1개 회계법인을 감독당국이 최종 선택하게 함으로써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기업이 선택한 외부감사인이라는 사설 경호원들만이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라 경찰인 감독당국의 공적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게 하는 것으로 국내외에 팽배되어 있는 회계정보에 대한 불신을 상당히 완화시킬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이 지난 8월부터 회계제도개혁 테스크포스(TF)를 만들고 노력한 끝에 나온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TF는 금융위·금융감독원(감독), 한국상장회사협의회(기업), 한국공인회계사회(감시)를 비롯해 회계·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향후 선택지정제의 시행에 있어서 그 적용 대상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선택지정제는 기업 스스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복수의 회계법인을 선택·제시함으로써 외부감사인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감독당국이 최종적으로 외부감사인을 지정함으로써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을 담보하게 된다. 따라서 선택지정제의 적용 대상은 외부감사인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훼손되거나 훼손될 우려가 있는 기업에 집중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건설 등의 수주산업은 산업전문성이 매우 높은 업종으로 선택지정제의 우선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외부감사인의 독립된 선임을 훼손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기업도 선택지정제의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 반대로 전문성 있는 외부감사인을 독립적으로 선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선택지정제를 적용할 당위성이 없다.

특히 금융감독당국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감사위원회의 역할과 책임 강화가 이번 선택지정제의 적용에 있어서 연계되어야 한다. 가령, 감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전문성 있는 외부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할 경우 선택지정제의 적용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위원회 구성의 인적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령 등의 후속적인 개정 노력이 요구된다. 회계제도개혁의 새로운 프레임인 ‘선택지정제’의 성공을 위해 적용 대상 등 시행 과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학계와 업계 및 금융감독당국의 총력적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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