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스터' 이병헌 "8년 만에 악역 맡아…애드리브로 캐릭터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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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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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스터'에서 진현필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배우 이병헌(46)은 변화무쌍하다. 순박한 선생님 수하(영화 ‘내 마음의 풍금’)를 지나 바람둥이 수현(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 냉혹한 보스와 전쟁을 벌이는 선우(영화 ‘달콤한 인생’)에 정치 깡패 상구(영화 ‘내부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변화무쌍한 캐릭터들을 연기했고 단 한 번도 고루한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

12월 21일 개봉한 영화 ‘마스터’(감독 조의석·제작 영화사 집·배급 CJ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작품에서 이병헌은 진현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가 맡은 진현필의 경우, 타인을 속이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고 다른 얼굴과 이면을 드러내야 하는 인물이었다. 이병헌은 이런 진현필의 모습에 마음이 동했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처럼 얼굴을 바꿔가며 사기 행각을 벌이는 기상천외함”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국내영화로는 8년 만에 악역을 맡게 되었어요.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이후 처음이죠. 여전히 악역의 행동에 납득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나쁜 사람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배제하려고 했어요. 단편적 악역의 느낌을 지우려고 한 거죠.”

영화 '마스터'에서 진현필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철저하고 섬세하게. 이병헌은 영화 속 진현필을 조금씩 다듬어갔다.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고 순간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모습”을 부여하는 등, 악역의 다각화를 실현한 것이다.

“극 중 진현필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 속 장경철(최민식 분) 같은 악역이 아니에요. 연기적으로 더 악랄하게, 잔혹하게 보이는 건 우리 영화와 방향이 다르죠. 제가 주목했던 건 금융 사기로 얼마나 더 악랄해질 수 있는지,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얼마나 큰 고통에 빠지는지 그려내는 것이었어요. 얼마나 악랄한 놈이에요? 금융사기를 위해 살인까지 벌이고 거기에 자기 합리화까지 하니까요.”

이병헌의 말대로 진현필은 달콤한 말로 상대를 현혹하고 그의 꿈과 희망을 앗아가 버리는 남자다. 이러한 진현필의 잔혹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영화의 오프닝이자 진현필의 첫 등장 신인 ‘다단계 연설 신’이다.

“실제로 사기꾼들이 연설하는 다양한 영상을 봤어요. 하지만 어쩐지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믿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서 영화적인 표현을 하려고 방향을 틀었죠.  영화 속 회원들은 물론 관객들마저도 넘어갈 수 있게끔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사기꾼 같은 면모가 그 한 신에 다 드러나야 하니까요.”

이병헌은 극 중 인물 혹은 서사를 마음껏 주무르는 배우다. 그는 진현필에 완벽히 일체 했고 아주 사소하고 세세한 부분들까지 살피려 했다. 끊임없는 고민과 아이디어로 인물을,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영화 '마스터'에서 진현필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들을 더 풍성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점들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계속해서 캐릭터를 생각하고 고심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죠. 평소 저는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고 조의석 감독과도 많은 의논을 했어요. 감독님은 제게 숙제를 주는 편이었고 저는 연구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죠. 이런 지점들 덕분에 영화에 더 참여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의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은 필리핀으로 도피한 진현필의 모습이었다. 영화의 2막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리핀 신에서 이병헌은 ‘원 네트워크’의 진 회장의 얼굴을 완벽히 지우고 새로운 진현필의 얼굴을 완성했다.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건 필리핀식 영어였어요. 제 후배의 모습을 보고 생각해낸 건데 영어를 참 잘하는 친구가 동남아에서 사업을 하더니 특이한 억양이 생겼더라고요. 비즈니스 상대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려고 일부러 억양을 만든 거라고 했어요. 그 기억이 강렬해서 진현필에 적용하면 좋을 거로 생각했고,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진현필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고민과 연구는 애드리브로까지 이어졌다. 평소 “애드리브를 좋아하지 않는 배우”라, 스스로를 소개했지만, 영화 ‘내부자들’ 이후로는 처지가 달라졌다. “모히토 가서 몰디브나 한잔할까”가 대 히트를 거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병헌은 “장면마다 다양한 애드리브를 구사하게” 되었고, 벽을 허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마스터’에서는 잘 안 먹혔어요. 하하하. 저는 여전히 세련된 유머를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의석 감독을 비롯해 스태프들이 ‘아재 개그’라고 놀리더라고요. 물론 당사자는 아재 개그인 걸 모르죠. 애드리브를 하면서 이렇게 코드가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마스터'에서 진현필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대중적인” 조의석 감독과, “세련된 유머의 소유자” 이병헌의 코드는 판이했다. 가장 첨예한 대립(?)을 벌인 것은 박장군(김우빈 분)의 배신에 발끈하는 진현필의 외마디였다. 이병헌은 “질풍노도의 시기니?”를, 조의석 감독은 “양면테이프니?”라는 애드리브를 밀었다고. 하지만 결국 이병헌은 한 수 물리고 조의석 감독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결국, 영화에는 ‘양면테이프니?’가 들어갔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빵 터지는 걸 보면서 ‘아, 졌다’고 생각했죠. 약간 분합니다. 하하하.”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영화계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상황을 그려내게 됐다. 특히 그 중심에는 이병헌이 있었는데, ‘내부자들’에 이어 ‘마스터’까지 현재 시국과 상응하는 부분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두 편 연달아 현재 시국과 맞물리게 되었어요. ‘마스터’의 경우, 소름 끼치게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외 도피나 페이퍼 컴퍼니 같은 것들은 낯설지 않죠. 지금 지쳐있는 모든 분에게 조금이나마 통쾌함을, 위로를 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라요.”

영화 '마스터'에서 진현필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내부자들’부터 할리우드 영화 ‘미스컨덕트’, ‘매그니피센트’에 개봉을 앞둔 ‘싱글라이더’, 현재 촬영 중인 ‘남한산성’까지. 이병헌의 2016년 또한 쉴 새 없었다. 그는 쉼 없이 질주하는 것에 대해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으면 아무 생각도 않고 푹 쉴 텐데. 끊임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 생겨나요. 완벽한 휴식도 취해보고 싶지만, 그걸 이겨내는 게 작품 욕심인 것 같아요. 다만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온전히 캐릭터를 만들 수 없을 거란 위기감은 들어요. 바쁜 게 좋은 거로 생각지 않아요. 이제라도 그런 부분은 경계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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