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위로 시간 내려앉은 곳…걸음마다 추억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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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1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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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기수정 기자 =어수선한 시국때문일까. 뜨겁게 끓어오르던 냄비가 한순간 식어버린 것처럼 한창 뜨거웠던 젊은 시절의 열정이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괜시리 울적한 마음이다.

한적한 그곳,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간이역에서 느림의 여정을 즐기고 싶어진다. 한국관광공사가 12월 여행지로 추천한 간이역은 눈을 감고 잊혀진 추억을 회상하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해를 맞을 계획을 세우기 좋은 곳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의 가슴에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이곳으로 떠나 옛 추억도 회상하고 숨가쁘게 달려온 한 해를 정리하리라 다짐해본다. 

◆녹슨 철길에 첫사랑이 내려앉다…양평 구둔역
 

한국관광공사는 구둔역과 철암역, 연산역, 임피역 등 네 곳을 12월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사진은 구둔역 철길을 걷는 여행객의 모습.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80년 가까운 세월이 묻어나는 곳, 양평의 구둔역은 퇴역한 노병처럼 주름 깊은 은행나무 한 그루, 엔진이 식은 기관차와 객차 한 량, 역 앞을 서성이는 개 한 마리를 벗삼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간이역의 흔적과 폐역 명패를 달고 벌판에 서 있는 ​구둔역. 지난 1940년 문을 연 이곳은 청량리-원주 간 중앙선 복선화 사업으로 종전 노선이 변경되면서 2012년 폐역의 수순을 밟았다.
 

한국관광공사는 구둔역과 철암역, 연산역, 임피역 등 네 곳을 12월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사진은 호젓한 느낌의 구둔역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구둔역의 빛바랜 역사와 광장, 철로, 승강장은 등록문화재 296호로 지정됐다. 

삐걱거리는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가 승강장과 철길을 서성이는 모든 동선에서 근대 문화를 더듬어볼 수 있다.

몇 년 전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애틋한 첫사랑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구둔역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12월이면 구둔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카페, 체험장 등도 문을 연다.

◆탄광 도시 철암의 ‘그때 그 모습’을 만나다…태백 철암역
 

한국관광공사는 구둔역과 철암역, 연산역, 임피역 등 네 곳을 12월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 사진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정부가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을 펴기 전까지 번성한 고장, 태백 철암은 한때 인구가 5만 명에 이를 정도였단다. 당시 철암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철암역이다. 이곳에는 석탄으로 번성하던 시절을 말해주듯,  4층 건물이 우뚝 서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구둔역과 철암역, 연산역, 임피역 등 네 곳을 12월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사진은 영화 인정사정 볼것 없다 쵤영지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철암역은 역사보다 그 옆에 자리한 선탄장이 유명한데,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쓰러질 듯한 2~3층 건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곳은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재단장해 박물관이자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철암역을 둘러본 후에는 태백 곳곳 관광지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다.

국내 석탄 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태백석탄박물관, 고생대 삼엽충과 공룡 화석을 전시하는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용연동굴,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까지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100년 넘은 급수탑에 철도 문화 체험 즐기다…논산 연산역
 

철도문화체험의 장으로 거듭난 연산역[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대전과 논산 사이에 있는 간이역, 연산역에는 상·하행을 더해 하루에 10회 기차가 정차하지만 이마저도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산역의 시간이 자연의 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흐르는 것도 이 덕이리라.

연산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을 만날 수 있다.
 

관촉사와 논산평야까지 굽어보인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화강석을 원기둥처럼 쌓아 올리고 철제 물탱크를 얹은 금수탑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48호로 지정됐다.

연산역에서 진행되는 철도 문화 체험은 쓸쓸한 간이역에 생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수단이 돼 준다. 그 덕에 주중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주말에는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연산역에서 가까운 논산 돈암서원, 질 좋은 농축산물을 거래하는 화지중앙시장, 은진미륵의 미소가 좋은 관촉사, 과학적이고 기능적인 한옥을 볼 수 있는 논산명재고택, 젓갈과 근대건축이 어우러진 강경근대문화코스까지 논산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시간이 멈춰 서다…군산 임피역
 

개찰구 바깥쪽에서 본 임피역사[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1924년 군산선 간이역으로 문을 연 임피역은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거점 역할을 했던 뼈아픈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1936년에는 보통역으로 승격하고 역사도 새롭게 지어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서양 간이역과 일본 가옥 양식을 결합한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은 지금의 역사는 등록문화재 208호로 지정됐다. 

물론 2008년 5월 여객 운송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현재는 꽃단장을 마치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군산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와〈레디메이드 인생〉 등을 모티프로 한 조형물이 들어서고 객차를 활용한 전시관도 생겼다.

승강장 쪽에 마련된 나무 벤치에서 고즈넉한 간이역의 풍광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개항장 군산의 독특한 분위기가 풍기는 근대역사문화거리, 군산 시민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은파호수공원, 신선한 해산물을 구입하고 맛볼 수 있는 비응항 등도 임피역과 함께 둘러보면 좋은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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