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통제 당하는 '대리인간'…주체적 삶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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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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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리사회 | 세계문학 브런치 | 큐레이션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대리사회'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펴냄
 

'대리사회' [사진=와이즈베리 제공]


'나는 지방대학 시간강사다'로 우리나라 대학사회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던 김민섭은 생계를 위해 한 달에 60시간씩 맥도날드에서 일 했다. 그는 '햄버거 제조 노동'을 할 때 법에 따른 노동자의 권리를 모두 보장받았지만, 끽해야 연봉 1000만원 정도를 받는 시간강사로 일할 땐 4대 보험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정규직 교수의 꿈을 안고 조교·시간강사 등으로 그렇게 8년을 버텼지만 그는 깨달았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것을. 

결국 대학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난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선택했고, 낯선 운전석에서 또 다른 '통제'를 경험한다. 액셀과 브레이크, 깜박이 등을 조작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손님에게 먼저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는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하고 통제하는 '타인의 운전석'이었던 것이다.

'대리사회'는 저자가 대리기사로 일하며 느낀 '대리인간'으로서의 자기성찰 그리고 그 일을 하며 마주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 등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며, 호칭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혀 마치 자신의 차에서 본인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해석은 꽤 인상적이다. 

저자는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가진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비합리와 비상식과 마주하더라도 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지적한다. 

누가 '진짜' 대통령인지, 진실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대리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강요된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그것이라 여기며 살지 않기 위해서, 즉 하나의 주체로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견고한 시스템과 마주해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는 '2016년 촛불'의 목소리와도 꼭 닮아 있다.

256쪽 | 1만3000원

◆ '세계문학 브런치' 정시몬 지음 | 부키 펴냄
 

'세계문학 브런치' [사진=부키 제공]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든 현대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 핀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책 단 한 권에 뿌리를 둔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정작 트웨인은 이 책 첫머리에 붙인 '고지 사항'에서 "이 이야기에서 무슨 동기를 찾으려는 독자는 고발당할 것이다. 교훈을 찾으려는 독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줄거리를 찾으려는 독자는 총에 맞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는 아울러 "고전이란 사람들이 칭찬은 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이라며 이른바 식자들의 허영을 비꼬기도 했다. 

'세계문학 브런치'는 이런 트웨인의 정신에 십분 공감하며, 어지러운 평론과 해석을 제쳐 두고 '고전 문학의 참맛'을 조금씩 선보인다. 저자 정시몬은 "그 어떤 이득을 따지기에 앞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어야 한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면서 그로부터 섭취할 수 있는 각종 비타민과 풍부한 섬유소만 생각하는 사람은 뭔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서양 문학의 원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셰익스피어의 희극·비극·역사극, 카프카의 부조리 소설 그리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전원시 등에 이르기까지 작가 50여 명의 작품 80여 편을 망라한다. 

사실 저자의 문학적 취향은 마이너리티에 가깝다. "널리 알려진 작품이나 베스트셀러보다는 '숨은 진주'를 찾아내 감상하는 쪽이 훨씬 더 즐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세계문학의 '정전'(正典)이라 할 만한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저자는 이 작품들이 "소문난 맛집에 진짜로 먹을 것도 많이 있는 경우"라며 "문학의 별전(別典) 또는 외전(外典)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그 다음에 들여다 봐도 늦지 않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장르 문학에도 기꺼이 한 챕터를 할애한다. 여기에는 셜록 홈스, 마플 등의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 제국주의 팽창의 기운이 만연하던 대영제국 전성기에 인기를 얻은 모험 소설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상상력을 보여 준 쥘 베른과 H.G. 웰스의 사이파이(sci-fi, 과학 소설) 고전들이 별처럼 번쩍인다. 

고전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이들에게 희소식 같은 책이다.

544쪽 | 1만8000원

◆ '큐레이션' 마이클 바스카 지음 | 최윤영 옮김 | 예문아카이브 펴냄
 

'큐레이션' [사진=예문아카이브 제공]


"사람들은 초고도 산업 사회의 딜레마인 '과잉 선택'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45년 전 '미래의 충격'에서 이런 경고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인은 넘쳐나는 뉴스로 오히려 진실을 알 수 없게 되고 진열대가 무너질 정도로 늘어선 제품들 사이에서 '결정 장애'를 겪기도 한다. 여기저기에서 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림 메시지 때문에 정작 본인이 알고 싶은 소식은 뒷전으로 밀리고, 복잡다단한 보험·연금 상품들 가운데 최종 선택은 결국 '아무거나'가 되기 십상이다. 

큐레이션은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자,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이다. 이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사용되던 것을 넘어서, 이제 패션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금융·유통·여행·음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단순함'이 비즈니스의 새로운 기회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단순함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해법은 쉽게 찾을 수 없다. 큐레이션은 선별, 배치, 정제, 전시, 설명, 보호 등을 거쳐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최고'만을 남기며, 이 과정에서 단순함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이 책의 저자이자 영국 옥스퍼드대 브룩스국제센터 연구원인 마이클 바스카는 "덜어냄으로써 '더 적게' 하고도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의 정보와 상품은 절대적인 양보다 그것을 얼마나 잘 큐레이션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편집자의 직감·흥미에 따른 큐레이션으로 유력 매스컴이 된 '보잉보잉'(Boing Boing), 미래형 슈퍼마켓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탈리'(Eataly), 콘텐츠 큐레이션으로 유럽 음원 시장 최강자로 떠오른 '스포티파이'(Spotify) 등 전 세계에서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큐레이션 활동과 성과를 자세히 소개한다. 

큐레이션은 '오늘날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432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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