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피 대신 거짓말이 흐르는 한국인…왜 우리는 또 속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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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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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거짓말 |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한국인의 거짓말' 김형희 지음 | 추수밭 펴냄

'한국인의 거짓말'                                                                                                         [사진=추수밭 제공]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부터 '100퍼센트 대한민국' '경제민주화', 그리고 '검찰조사 수용'까지…. 우리는 최근 몇 년 새 거대한 '거짓말'에 철저히 농락당했다.   

비단 대통령뿐일까. "조선인은 거짓말을 잘 한다. 남을 속이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잘한 일로 여긴다."(하멜표류기)  "이 민족을 현재의 쇠퇴에서 건져 행복과 번영의 장래로 인도할까 생각하는 형제자매에게 드립니다. (중략) 첫 번째,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이 없게 함이니."(도산 안창호, 민족개조론) 

이처럼 한국인은 예로부터 거짓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오죽하면 "한국인의 혈관에는 피 대신 거짓말이 흐른다"는 말까지 나돌았을까. 실제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범죄 대비 사기범죄율 1위 국가(2013년 WHO 발표)이며, 2005년부터 5년간 '세계 가치관 조사' 20대 한국인의 자국민에 대한 신뢰도 부문에서 32.9%를 기록,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 책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이웃들의 거짓말 사례 1038개를 분석해 한국인의 거짓말 신호 25가지를 밝힌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거짓말하는 방식 △한국인이 거짓말하는 이유 △거짓말을 간파해 한국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잘못 알고 있는 거짓말 신호와 한국인들이 거짓말할 때 드러나는 신호, 그리고 걸려들기 쉬운 거짓말과 그에 대처법 등 구체적인 거짓말 간파법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한국 남성은 거짓말할 때 무수히 많은 진실을 제공함으로써 거짓을 은폐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 반면 여성은 제공하는 정보 자체를 극단적으로 차단하는 전략을 취한다. 즉, 거짓말을 할 때 한국 남성은 말이 많아지고 여성은 말수가 적어진다는 얘기다. 이 책은 이러한 언어적 단서 뿐만이 아니라 몸짓 언어와 발성 등 한국인이 거짓말할 때 흘리는 모든 한국적 단서들을 망라했다.

우리가 거짓말을 알아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거짓말을 간파하는 기술을 배우는 데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인의 거짓말 습관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거짓말이란 어떤 의미인지, 왜 한국 사회에서 거짓말이 만연하는지를 추적하는 데까지 범위를 확장한다. 

216쪽 | 1만3800원


◆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존 켄드릭 뱅스 지음 |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펴냄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사진=책읽는귀족 제공]



미국의 근대 작가이자 편집자 존 켄드릭 뱅스(1862~1922)는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했다. 그의 최대 장기인 인문·사회·정치 풍자가 제대로 발휘된 이 작품은 당시 '언더그라운드의 베스트셀러' '21세기를 위한 동물농장' 등으로 평가됐던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다. 

이 책은 자칫 심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내 끊임없이 독자를 웃게 만든다.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특징과 형식을 잘 살린 데다 간간이 우스꽝스러운 시들을 삽입해 언어유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연상시킬만큼 예리한 풍자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책장을 무턱대고 넘길 수는 없다. 

일례로 '엉망진창 나라'에서는 아이들 역시 시(市)의 소유물인데, 이 덕분에 아이들은 시 보육원에 맡겨져 '과학적 요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방식으로 훈육·관리된다. 얼핏 황당한 내용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는 공산주의 사회의 이상과 그 폐단 등 현실에 대한 지극히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공산주의 국가가 본격적으로 출현하지 않았던 시기인 1907년 발표됐으며,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를 풍자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발표된 1945년보다도 한참 앞선다. 

적어도 경찰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는 뇌물을 받거나 죄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을 가장 많이 자는 도마우스가 경찰청장으로 임명되거나,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더 좋은 걸 약속해주는 식으로 끝없이 공수표만 남발하는 공무원·정치인들의 행태도 어김없이 도마에 올려진다. 옮긴이는 "이 책에는 '경찰은 시의 소유가 아니라 기업들과 가진 자들의 소유'라는 뼈아픈 주장도 거침없이 나온다"며 "뱅스의 풍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에 비추어 봐도 손색이 없다"고 평한다. 

인간의 본성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신랄한 풍자로 풀어낸 '사이다'같은 동화다. 

272쪽 | 1만5000원


◆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양경수 글·그림 | 오우아 펴냄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사진=오우아 제공]



'보람'을 싸들고 온 사장에게 "어디서 개수작을!"이라고 일갈하며 손가락으로 돈을 그려 보이는 당돌한 회사원. 일러스트레이터 양경수는 올해 화제가 된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를 통해 이 같은 '속 시원한' 삽화를 선보였다. 

양경수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던 '참고 견디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등의 고상한 조언들에 '내가 왜?'라는 당돌한 물음표를 날렸기 때문이다. 

한 달에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초과근무 끝에 일과 삶에 대한 막막함과 절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토로하다 끝내 자살한 일본의 한 신입사원의 이야기는 남 일이 아니다. 또한 회사에 열정을 바치고, 참고 견디며 배우다보면 이룰 수 있다는 식의 자기계발 신화는 평범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비웃고 모멸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양경수의 '약치기 그림'과 미공개 컷들을 담고 있는 이 책에는 휴일과 명절에 집에 가지 못한 채 야근에 시달리는 회사원들이 등장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들은 사무실 책상에 컵라면과 삼각김밥, 혹은 편의점 도시락을 펼쳐놓고 '엄마밥'을 그리며 슬픈 '도형놀이'를 한다.

캄캄해져가는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며 '너무 힘든데 힘들다고 말하기 힘든 세상이라 더 힘들어'  '긴 하루가 가네, 난 또 집에 못 가네'라고 중얼거리는 직장인들, 가족을 위해 굴욕을 견디며 일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보다 원수같은 직장 상사와 보내는 시간이 인생에서 몇 배는 더 많은 평범한 노동자들은 우리 시대의 초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속 직장인들의 모습이 더 애달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들이 대개 웃고 있는 표정이기 때문이다. '바른 생활' 교과서나 자기계발서속 삽화 인물들처럼 환하게 웃고 우수사원 표창이라도 줘야 할 것처럼 열정이 넘쳐 보이지만, 그들이 웃음을 머금은 채 읊조리는 말들은 가슴을 후빈다. 

280쪽 | 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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