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나이 스물이면 사장이 돼라" 푸젠 화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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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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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젠 사람의 후예…대만은 '중소기업 천국'

  • 동남아 각국 활약하는 화교 거상들 '푸젠성 출신'

  • 필리핀 주식시장 50% 좌지우지하는 푸젠 화교들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대만이 중소기업 천국인 이유

별빛을 모으면 보름달 빛보다 밝다. 몇 해 전이던가, 음력으로 유월 보름날 밤, 필자는 몽골초원에 누워 그 사실을 확인했다. 은하수가 금방이라도 폭포수처럼 쏟아질 듯한 '별의 바다'에서 오래 전 푸젠(福建)에서 만난 한 앳된 사내의 기억이 떠올랐다.

20대 초반의 새파란 나이에 자신의 업체를 몇 개나 거느리고 있다고 푸젠 총각은 자랑처럼 말했다.

“여기에는 해도 달도 없어요. 별들만 가득하지요. 하지만 별들이 발산하는 빛은 보름달보다 찬란하지요.”

정말 그렇다. 푸젠은 '소형기업의 천국'이다. 작은 별처럼 무수한 소형업체가 발하는 경제력의 빛은 한 개의 보름달 같은 대기업보다 강하다. 이렇다 할 대형 국유기업은 하나도 없다. 종업원수 20명도 안 되는 소규모 사영업체가 경제총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푸젠의 경제는 비할 바 없는 활력이 넘치고 있다.

약관의 남이 장군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후 백두산에다 평정비를 세우고 비문에 이렇게 새겼다.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후에 이 비문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간신배에 의해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변조됐다. 결국 젊고 푸르던 남이의 목은 서른도 못돼 추악한 음해에 잘렸다.

우리나라와 달리 ‘배 아픈 것은 참아도 배고픈 것은 못 참는’ 중국 푸젠 지방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다.

“나이 스물에도 사장이 되지 못하면 사나이라고 말할 수 없다.”

푸젠 지역은 오래전부터 20대 전후의 청소년 사장들 천국이었다. 남이 장군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대여섯 개 업체의 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은 푸젠에서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겁을 상실한 어떤 ‘무서운 아이’는 두 자리 수에서 세 자리 수의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푸젠 상인은 수중에 10만 위안이 있으면 은행에서 다시 10만 위안을 더 빌려 투자하려고 한다. 다른 지역 중국상인들처럼 쩨쩨하게 은행에 5만 위안을 저축하고 5만 위안을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푸젠 지역에는 작은 부자와 소기업은 많으나 큰 부자와 대기업은 적은, 아주 뚜렷한 특징이 있다. 이러한 유별난 특징은 푸젠 지역 발전의 양날의 칼, 즉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2015년 중국 100대 부자 중 푸젠 출신 부자는 3명(43위, 70위, 98위)에 불과하다. 푸젠의 100대 부자 출신지 성(省)별 순위는 최하위권인 반면, 개인 재산 18억원 이상을 보유한 천만장자가 많이 사는 성별 순위는 광둥·저장·장쑤에 이은 4강으로, 최상위권이다. 또 내륙의 신장위구르자치구(2개), 닝샤회족자치구(1개), 네이멍구자치구(1개)에도 있는 중국 100대 민영기업이 푸젠에는 단 1개도 없다.

그 뿐만 아니다. 푸젠의 맞은 편 대만이 중소기업과 가족기업 형태가 발달한 원인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대만 사람 대부분은 명말청초에 섬으로 건너간 푸젠 사람(특히 푸젠 동남부, 민난지방)의 후예이다.
대만이 2014년 말 현재 4239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여 외환보유고 세계5강(한국 3636억 달러, 제6위)인데도 불구하고, 글로벌 슈퍼리치 200위에 드는 갑부가 단 1명에 불과한 상황과도 맞아 떨어진다. 중소기업의 천국이라며  대만을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사람의 수가 적지 않은 그만큼, 삼성·현대·SK·LG등 글로벌 대기업을 지닌 한국을 부러워하는 대만사람의 수도 많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가.


◆화교·화인·화예, 재한 조선족도 화교

넓은 의미의 화교는 화교(華僑)와 화인(華人), 화예(華裔), 세 가지로 구분한다. 화교는 중국 국적의 해외 체류 중국인이며, 화인은 현지 국적을 취득했으나 중국계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중국인, 화예는 자신이 중국인의 후예임을 인식하나 중국계 커뮤니티에 참여하지 않는 중국혈통을 일컫는다. 대개 화교라고 하면 화교·화인·화예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의 광의의 화교를 일컫는다.(1)* 현재 약 6000만명 세계 화교들의 본향은 대부분 중국 푸젠성과 광둥성이다.
 

세계중국인 글로벌 톱100 슈퍼리치 분포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홍콩(650만), 마카오(50만), 대만(2300만)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는 6000만 화교(개혁개방 이후 신화교 1200만 포함)들이 살고 있다. 해외 화교 중에는 푸젠어 사용자가 3000만명으로 가장 많고, 광둥어 1500만명, 커자어 등 기타 중국방언 1000만명, 만다린 표준어 사용자 500만명 순이다.

이렇듯 푸젠 출신 화교수가 광둥 출신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구에서 화교하면 으레 광둥 출신으로 잘못 알려진 까닭은 영국이 통치했던 홍콩의 주민 원적이 대부분 인근 광둥성이고, 19세기 말 미국의 흑인 노예를 대체하는 노무인력으로 수출되었던 중국인 '쿨리'의 대다수가 광둥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푸젠 화교들이 이웃한 광둥 화교들과 가장 다른 부분은 자녀교육이 엄격하다는 것이다. 푸젠 화교들은 특히 자녀를 현지인이나 백인과 피와 살을 섞게끔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는다.

대만 해협 건너편 대만 국민의 90% 이상도 명말청초에 건너간 푸젠 사람들의 후예다. 대만의 전 총통 천수이벤과 리덩후이의 원적지도 푸젠성이다. 대만 거주 푸젠 후예 2000만명을 합친다면 대륙 밖에 살고 있는 중국인 중 푸젠 사람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 화교의 60% 이상, 특히 150만명 필리핀 화교 가운데 90%가 푸젠의 후예이다. 아세안 각국에서 활약하는 화교 거상들은 대부분 푸젠 출신이다.
 

[아세안 각국의 화교 비중]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푸젠 상인은 중국과 대만에서 사업할 경우에는 '뭇별'이지만 이국만리 멀리 떠나 사업하면 뭇별들은 보름달보다 훨씬 밝은 초신성 슈퍼스타로 확 변한다.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16명의 중국인 글로벌 TOP 110 슈퍼리치 중 5명이 화교인데, 푸젠 출신 2명의 슈퍼리치가 랭크돼 있다.  이들은 각각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최고 갑부다. 

실제로 필리핀 시장에서 노점상이거나 점원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필리핀 원주민이고 한쪽 구석에서 돈을 세거나 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푸젠 화교들이다. 1억700만명 필리핀 전체 인구 중 1.5%를 차지하는 푸젠 화교가 필리핀 전체 상장주식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6년 필리핀 갑부서열: 1·3·4·6·7위 푸젠 화교)(2)*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페낭 등 대도시에는 화교, 중소도시 이하 농어촌 지역에는 말레이계가 살고 있다. 은행이나 관공서의 일선 창구에는 다수 인종인 말레이계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뒷줄 관리직으로 갈수록 화교들의 비중이 커진다. 말레이시아는 총인구의 약 29%가 화교이나 이들이 상장 주식의 61%를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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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중국당국은 현재 한국에 장기체류중인 재한중국인(대부분 조선족) 약60만명(추산)도 대한민국 국적취득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화교로 분류하고 있다.
(2)*http://www.forbes.com/billionaires/#/version:static_country:Philippines

[참고문헌]
강효백, 『중국의 슈퍼리치』, 한길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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