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의 40년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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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2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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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이 최순실 게이트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방송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아주경제 이정주 기자 =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연일 뒤흔들고 있다. 당초 미르·K스포츠 재단의 비리 의혹이 제기될 때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정권에서나 발생하는 ‘불법 자금’ 차원의 문제로 치부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여당 내부에서조차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경력도, 전문성도 없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첨삭까지 했다는 사실에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다. 정치권력의 정점이라 불리는 대통령이 정권 말기 측근 비리로 몸살을 앓는 것은 비단 이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는 통상적으로 발생한 전형적인 대통령 측근 비리의 양상과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대통령이 비리에 연루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실질적인 막후 권력’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태의 발화지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최태민’이라는 막다른 골목을 만나게 된다. 최순실 게이트의 원인과 구체적인 진상 파악을 위해선 ‘최태민’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최태민 씨에 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은 과거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관련 자료'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 씨는 황해도가 원적이고, 본적은 경남 양산군이다.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의 직업은 대한구국봉사단 총재였다.

보고서에는 최 씨가 총 7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선녀가 지었다는 아명 ‘최도원’, 월남 후 경찰, 육군 및 해병대 비공식 문관으로 재직할 때 개명한 ‘최상훈’, 부산 거주 시 사용한 ‘최봉수’, 법명 ‘최퇴운’, 천주교 영세시 받은 ‘공해남’, 영혼합일법 등 사이비 행각시 사용했다는 ‘방민’,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시절 사용한 최태민 등이다.

최 씨는 지난 1954년 최퇴운이란 이름으로 불가에 몸담았다. 이후 1955년 최 씨의 5번째 부인인 임선이씨와 재결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선이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80주년 생일잔치 때 노래를 불러 축하해줬다는 최순실 씨의 어머니다.

최 씨는 지난 1969년 천주교 중림성당에서 '공해남'이라는 세례명을 받기도 했다. 또 1971년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를 복합, 창업한 영세계의 교리인 '영혼합일법'을 주장한 바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주체는 이를 '사이비 종교 행각'이라고 기록했다. 최 씨가 ‘방민’이란 이름으로 "독경 및 안찰기도로 환자치유"를 했다고 전했다.

또 1973년 5월 대전시 현대예식장에서 영세계 칙사를 자칭, 영혼합일법 설교를 하고, 서울 등지의 건물주에게 자신이 칙사 혹은 태자마마라고 자칭하며 해당 건물에 입주한 것으로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특히 1975년 3월 ‘박근혜에게 ’꿈에 육 여사가 나타나 근혜 양을 도와주라고 하였다'는 요지의 서신을 발송 끝에 박근혜와의 접근을 성취했다‘는 부분은 박 대통령과 최초 접촉한 과정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또 ’1975년 4월 10일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취임 계기로 사이비 교파인 예정종합총회장 조모 목사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 씨는 ‘목사’로 불리지만 오히려 사이비 교주나 다름없는 게 중론이다. 최 씨는 목사, 승려 등 여러 직업을 거쳐 자신을 미륵이나 단군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최 씨가 마든 영생교 교단은 교리가 정리된 책도 없고, 교인도 수십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독교계에서는 최 씨가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상태로 목사 칭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최 씨의 결혼 행적 또한 의혹 투성이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최 씨의 부인은 총 6명이다. 자녀들은 총 3남 6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모두 몇 명인지 확인된 바 없다.
 

[사진=JTBC 캡처]



이번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는 다섯번째 부인의 딸이다. 최 씨는 많은 자녀들 중에서 특히 최순실 씨를 총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씨가 아버지로부터 현몽(죽은 사람이나 신령이 꿈에 나타나는 것)을 물려받아 영적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 씨는 지난 1994년 노환으로 사망하는데 이 당시 최순실 씨는 최 씨로부터 수백억대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일에 쌓였던 최 씨의 존재는 지난 1990년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분쟁 발생으로 본격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의 동생 근령 씨가 최 씨의 행동을 비난하며 “최태민 씨에게 포위당한 언니 박근혜를 구출해달라"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보내기도 했다.

국정농단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 씨는 1952년에 태어나 1975년 단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같은 대학원 영문학과를 수료했으며, 최근 최서원으로 개명했다.

최 씨는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을 역임하고 1990년대에는 강남구 신사동에 몬테소리 교육으로 유명한 초이유치원을 개원하기도 했다. 최 씨는 지난 1982년 26세에 대구 출신 김모씨와 결혼한 후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아버지 최태민 씨의 비서 출신인 정윤회 씨와 지난 1996년 재혼해 딸 정유라 씨를 낳았다. 그러나 지난 2014년 5월에 정씨와도 이혼했다.

최 씨는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에도 박 대통령 곁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당시 습격 사건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최 씨의 언니가 병실에서 박 대통령을 간호한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비선 실세로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외부로 드러난 적은 거의 없었다. 지난 2014년 11월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윤회 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 검찰은 개입 의혹은 허위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전 경정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지난 2012년 대선 때까지 공식캠프 외에 '삼성동팀', '논현동팀' 등의 비선 조직을 운영했는데 그 중 삼성동팀의 핵심이 최 씨였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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