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101]정치판에서 맺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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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8-25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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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101)

  • 제6장 재계활동 - (96) 가까웠던 동료의원(同僚議員)들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목당(牧黨) 이활(李活)이 정계에 나가 값비싼 경험을 얻은 것 외에도 또 얻은 것이 있었다면 재계(財界)에서 대할 수 없던 인물을 그 마당에서 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야심을 앞세우는 소장군인(少壯軍人)들은 목당의 비위를 건드렸고 그들 또한 목당을 경원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국회 부의장 장형순(張炯淳)은 거처를 이웃하고 있었던 인연도 있지만 목당의 집에 자주 들러 시국담(市國談)을 주고받는 사이였고, 여행에 나서면 서로 안부를 묻는 친교로 발전했다.

김성곤(金成坤) 의원(성곡(省谷), 1975년 작고)은 공화당 출신 재경위원장(財經委員長)으로 4인조의 핵심인물이었지만 고대(高大) 동창회장이었던 관계로 목당과는 가까운 처지였다. 그러나 정치노선(政治路線)을 달리하는 처지여서 깊이 사귈 처지는 못 되었다.

함덕용(咸德用) 의원(심호(心湖))은 같은 상공분위(商工分委)에 속해 있던 민중당(民衆黨) 출신 의원이었는데 매우 소탈하여 목당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는 처지였다.

그리고 나용균(羅容均) 의원(백봉(白峰), 1984년 작고)도 민중당 출신으로 국회부의장이었는데 목당과는 와세다(早稻田) 및 런던대학의 동창인데다가 같이 한민당(韓民黨)의 창당위원(創黨委員)으로 활동했던 사이다.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의 측근 인물의 한 사람이기도 했던만큼 가장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이고, 정구영(鄭求瑛) 의원(오촌(午村), 1972년 작고)은 변호사 출신이었는데 공화당 창당위원으로 공화당 총재를 지냈다.

김종필(金種泌) 구주류파(舊主流派)의 보스였던 인물로 목당이 공화당 창당에 가담하는 데는 앞서 밝힌 대로 바로 이 정구영의 권고가 있어서였다.

전진한(錢鎭漢) 의원(우촌(牛村), 1972년 작고)은 목당과는 와세다대학 동창 관계였는데 민중당 출신으로 보사위(保社委)에 속해 있었지만 한민당 때부터의 동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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