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하의 갤럭시노트] ‘닥터스’의 기이한 성공…김영애까지 없으니 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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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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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방송 화면 캡처]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28일 시청률 15%를 넘기며 실로 간만에 SBS 드라마국에 활력을 불어넣은 수목드라마 ‘닥터스’의 성공은 기이하다.

‘닥터스’의 큰 줄기는 이렇다. 날 선 반항아 박신혜가 사랑이 충만한 의사 출신 교사 김래원을 만나 새 인생을 다짐한다. 트라우마로 의사 생활을 접고 교사의 길을 걷다 다시 의사가 된 김래원과 할머니를 죽게 만든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 하나로 의사가 된 박신혜가 사제지간이 아닌 의사 선후배로 다시 만나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사랑을 시작한다.

치열한 의사의 삶, 병원에서 꽃 피는 사랑, 남녀 관계로 발전하는 사제지간…작품은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신물 나게 봐온 유구한 심상을 게으르게 반복ㆍ재생산한다.

순간순간 개연성을 잃은 캐릭터의 말과 행동은 작품 전체를 흔든다. 박신혜가 마음먹고 공부 며칠 했더니 단박에 전교 1등이 되고, 거구의 조폭들과 17대 1로 싸우고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것은 그중 가장 작은 것이다.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여자가 치료는 무슨 치료. 남자 의사 데려와”라며 박신혜의 진료를 거부하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수줍은 표정으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이기우는 그렇다고 치자.

방화 사건의 책임을 홀로 뒤집어쓰고 유치장에 들어갔다가 겨우 나온 고등학생 박신혜에게 김래원을 뺏길까 두려워 “너 지홍(김래원 분)이 좋아하지?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편한 거야. 네가 사는 곳과 지홍이가 사는 곳은 너무 달라 지홍이하고 난 같은 곳에 살고 함께 있음 서로 윈윈이다. 직설화법으로 말하자면 넌 지홍이한테 방해돼”라며 대안학교 진학을 강권하는, 다 큰 어른 유다인의 모습은 비상식을 넘어서는 충격이다. 유다인의 말에 상처를 받아 “선생님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라”며 자신을 애써 밀어내는 박신혜를 향해 “나 진짜 가도 돼?”라고 애처럼 투정부리는 교사 김래원은 재앙에 가깝다.

작가의 태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래이션에 대한 집착은 강박 수준인데, 박신혜를 무기력하게 떠나보낸 김래원의 “사랑할 때 미치는 건 뇌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랑할 때 미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이다. 난 사랑에 미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대가를 치렀다”는 나래이션이나 의료사고로 할머니를 잃고 의사가 된 박신혜의 “성공하고 알았다, 성공은 성공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는 것. 단 한 명의 가족을 잃었다. 가족을 만들고 싶은 욕망도 잃었다. 그래서 집보다 차를 선택했다” 따위의 나래이션은 보는 이의 마음에 꽂히지 못하고 힘없이 추락한다.

섬세함 대신 낡은 표현을 채운 이 드라마를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힘은 김영애의 호연이다. 몸도 팔고, 웃음도 팔고, 마음도 팔면서 거칠 것이 살았던 김영애는 모난 손녀 박신혜가 자신의 과거와 꼭 닮아 더 애절하다. 손녀의 과오를 대신 사죄하기 위해 주스 선물세트를 들고 찾아간 부잣집에서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딴 걸 들이미냐”며 문전박대를 당하는 순간에도 “이거 100% 주스인데…한번 드셔 보세요”라고 굽신거리는 장면은 잠깐이지만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유치장에 들어가 삶을 포기한 손녀에게 “나 수술받아. 너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할미가 내 막장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그러니까 너도 살아”라며 애써 눈물을 참을 때, 비현실과 클리셰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이 드라마는 현실에 발을 딛는다.

박신혜가 아무리 IQ가 150이 넘어도 어떻게 단박에 의대를 가느냐 싶다가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특별하게 한번 살다 가야 하는 거 아니냐. 할미 죽기 전에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할머니(김영애 분)이 있다면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싶다. 이렇게 김영애는 찰나로 작품 전체의 결핍을 무마한다.

27일 방송된 3화분에서 김영애는 의료사고로 사망했다. ‘닥터스’의 앞날이 걱정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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