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10시 출근, 5시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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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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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열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김동열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10시 출근, 5시 퇴근'. 이런 직장이 있을까?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한국에서는 꿈이지만 스웨덴에서는 현실이다. 물론 스웨덴의 모든 지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테보리시(市)의 스바르테달렌스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스바르테달렌스의 직장인들은 하루 8시간씩 1주일에 40시간 일하던 것을 하루 6시간씩 1주일에 30시간 일하는 것으로 바꿨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월급은 똑같다. 환상적이다. 근무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사람을 더 뽑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근무시간은 줄었어도 월급은 똑 같은데 사람까지 더 뽑는다고 한다면 감당할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1년 동안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근로시간 단축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직원들의 건강이 좋아지고, 결근이 감소하고, 생산성이 증가하고, 경영성과가 개선됐다고 한다. 물론 병원처럼 24시간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곳에서는 불가피하게 사람을 더 뽑았고 인건비가 더 지출이 됐다. 하지만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의 만족도가 올라가면서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임금은 똑같이 주면서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0시간으로, 하루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줄어든 근무시간을 다시 늘리기는 쉽지 않다. 월급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특정 지역에서 소규모로 그리고 시범적으로 실시해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실험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알파고에 대비하는 의미가 있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로봇이 널리 보급되면 그만큼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만큼 일자리를 나누고 근무시간을 줄여갈 수밖에 없다. 근무시간을 줄여도 업무량이나 생산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자리 감소의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보다 쉬워진다는 것이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도 가능해지고, 저녁에 일찍 퇴근해 아이와 놀아주거나 청소, 빨래, 저녁 준비 등 가사 분담이 쉬워진다. 그 결과, 아내에게 쏠려 있던 자녀양육의 부담이 남편에게도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처럼 낮은 출산율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들에게 ‘10시 출근, 5시 퇴근’은 참신한 해법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 5시에 퇴근하는 직장의 경우 아무리 늦어도 6시에는 퇴근하게 되고, 집에 오면 7시가 된다. 간단히 저녁 준비하고 식사하고 나면 8시30분쯤 될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10시까지 출근하면 되기 때문에 저녁시간과 아침시간이 여유롭다. 이처럼 저녁이 있어야 하늘의 별도 보게 되고 자녀도 생긴다. 출산율이 자연히 높아진다.

지난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삶의 질’ 순위를 발표했다. 38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일자리,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일-가정 양립 등 11개 항목을 평가해서 매년 국가별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24위, 2014년 25위, 2015년 27위, 2016년 28위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환경 37위, 일-가정 양립 36위, 공동체 37위, 삶의 만족도 31위 등이 특히 심각하다. 주50시간 이상 일한 임금근로자의 비율은 23.1%로서 터키, 멕시코에 이어 세번째로 높았고 OECD 평균(13%)보다 10%포인트 높았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만하다 보니 건강도 문제, 가정도 문제, 지역사회 공동체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의 주30시간 실험은 너무 반가운 소식이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그대로 줘도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영에 미치는 악영향이 별로 없다는 중간평가 결과는 더욱 더 반갑다. 우리도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스웨덴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그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주 30시간 근무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사를 보고 싶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절박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아이보다 늦게 출근하고, 아이보다 일찍 퇴근하자. 아내가 좋아하고 아이가 좋아한다. 그러면 둘째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렇게 사회가 바뀌면 저출산, 그거 아무 것도 아니다. 합계출산율이 1.2가 금방 2.1로 뒤바뀔 수 있다. 저녁 없는 삶을 저녁 있는 삶으로 바꾸자. 그러면 나도 살고, 가정도 살고, 회사도 살고, 나라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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