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북핵 주도권 틀어쥔 왕이, 중국내 최고 아시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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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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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재동참 수세에서 대화압박 공세로 전환

  • 5자회담 수용의사 밝히며 전례없는 대북유연성

왕이 중국 외교부장.[사진=신화통신]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새해 벽두인 지난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북한에 대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그 어떤 행동도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입장을 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게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문했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과거와 마찬가지로 유보적이면서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1월11일 미국의 폭격기 B-52가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자 중국측은 '냉정과 절제'를 촉구했다. 이어 2월7일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자 중국 외교부는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관련 당사국이 냉정과 절제를 통해 신중히 행동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냈다. 중국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장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답답한 수사(修辭)의 반복이었다.

2010년 천안함 연평도 도발때에도 중국은 '냉정과 절제'를 되풀이 했으며,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때에도 '냉정과 절제'를 주문했었다. 이는 우리나라입장에서 보자면, 중국이 마치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행보였다. 올해 역시 이같은 자세가 반복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국이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공세적 자세로 전환하며, 북핵문제를 주도해나가고 있다.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유엔 안보리제재안을 통과시켰고, 전에없이 강도높은 대북 제재를 실행하고 있으며, '한반도비핵화와 평화협정체결 투트랙'이라는 카드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외교전을 뒤흔들고 있다.

게다가 과거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고수했다면, 이제는 3자·4자·5자회담도 수용가능하다며 대폭 유연성을 가했다. 제재동참을 두고 수세에 몰려있던 중국이, 이제는 대화압박 카드로 공세적 외교자세를 취하고 있다. 외교공세 최전방 공격수는 중국내 최고 아시아통인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맡았다. 현 상황에서 왕이 부장이 북핵 주도권을 틀어쥐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북핵외교 모멘텀 만들어

중국 외교 대전환의 모멘텀은 2월23일로 예정됐던 한미간 사드논의 공동실무단 약정체결이었다. 약정체결을 앞둔 22일 왕이는 미국을 전격 방문했으며 23일(현지시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협상을 벌였다. 사드배치 공동실무단 약정체결은 돌연 미뤄졌다. 그리고 왕 부장이 당시 케리 장관과의 회담에서 실효성 있단 대북제재안을 매개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안 도출을 이끌어냈다. 2월 24일(현지시간) 미중 양국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초안을 최종합의했다. 대북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이 협조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섬으로써, 2개월여 답보상태를 보이던 유엔안보리 결의안은 급물살을 탔고, 지난 2일 통과됐다.

게다가 왕 부장은 지난달 케리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 카드를 꺼내들었다. 중국이 대북제재동참을 두고 수세적 입장에 몰려있었다면, 평화협정 카드는 중국을 대미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시킨 역할을 했다. 미국은 평화협정에 대해 소극적이고 유보적인 입장이다.

 

왕이 부장이 지난달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과 회담을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미국, 러시아 종횡무진

왕 부장은 또한 지난 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북핵해결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투트랙'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는, "3자·4자·5자회담도 수용가능하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냈다. 중국은 한반도관련 대화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며, 미국에 대화를 재개하라는 압박을 한 셈이다.

이어 왕 부장은 지난 11(현지시간)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한 후 다시 한번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의 뜻을 밝혔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이 안보리 결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2005년 9.19 공동성명에 기반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길 기대한다"며 대화재개를 촉구했다. 겉으로는 북한에 대해 대화재개를 촉구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대한 대화재개 압박으로 받아들여진다.

◆외교관 첸자둥의 사위

1953년생인 왕이 부장은 중국내 최고의 아시아통이다. 그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총애했던 첸자둥(錢嘉東·89)의 사위이기도 하다. 첸자둥은 1953년 외교부 아주사로 발령받아 제네바회담과 중국·인도 국경협상에 참여했다. 1966년 저우언라이 비서로 일하다 83년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소에 부임해 2년 뒤 사무소 대표로 승진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2001년)하는 초석을 닦았던 인물이다.

베이징 제2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왕이는 수재였다. 졸업후 1982년 29세의 나이에 외교부에 들어갔으며, 김일성이 사망하던 1994년 아주사 부사장(司長)에 올랐다. 왕이는 이어 1995년 6월 아주사 사장(司長), 98년 4월 외교부 부장 조리(助理)에 이어 2001년 만 48세 나이에 외교부 최연소 부부장(차관)이 됐다. 2003년 8월 제1차 6자회담의 중국 측 수석대표로 활동했으며, 2004년 9월 주일대사로 부임해갔다. 2007년 중국으로 돌아와 외교부 부부장을 역임한 후 2008년 대만공작판공실 주임으로 일하다가 2013년에 외교부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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