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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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0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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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대전현충원 준공 30주년, 국민누구나 대 환영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 [사진=모석봉 기자 ]


아주경제 모석봉 기자 =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은 “국립대전현충원은 지난해 11월 13일 준공 30주년을 맞았다. 모토가 열린현충원, 밝은현충원으로 국민누구든지 언제나 오시든 대 환영”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립대전현충원의 핵심기능은 안장과 참배로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했던 정신을 안장되기 직전에 최후로 드리는 최상의 예우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국립대전현충원에 대해 소개

대한민국에 현충원이 두 곳이 있다.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이다. 두 곳을 비교해 보겠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역사로는 대전현충원보다 24년 빠르다. 1955년 7월 15일에 설립이 됐고 대전은 1979년 8월 25일에 설립됐다.

서울현충원은 안장기수가 5만4400기이고 대전현충원은 7만5800기이다. 그런데 현충원의 공통적인 요소는 서울이든 대전이든 1895년 국모인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이 있었다. 바로 10월 8일이고 음력으로는 8월 20일이다. 이때서부터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제국주의에 항거해서 1905년도 을사늑약으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국권을 빼앗기다 시피 했다.

1910년도 나라는 기울게 되고 이럴 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 이분들 안장된 분들이 3270여분 된다. 그리고 이곳에 민족사에 가장 최대 비극이라 할 수 있는 6.25전쟁, 그 숫자로 증명해 보이면 우리 현충탑은 국립대전현충원의 센터에 있다. 그 현충탑에 4만1100여분을 위패로 모시고 있다.

그 분들 전부 시신도 못 찾는 6.25전쟁 중 산화 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또 국가의 부름에 따라서 월남전에 파병이 되신 분들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964년 7월 18일부터 8년8개월 5일 1973년 3월 23일까지이다.

월남전이 패망한 날은 1975년 4월 30일이지만 우리는 미국과 더불어서 조금 일찍 철수 했다.

그때 파병된 숫자가 31만2853명인데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많은 분들이 전몰, 전사, 무공 세우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또 천안함 용사들, 연평도 포격전, 2002년 연평해전의 용사들, 경찰관 4700여명, 소방관, 독도의용수비대, 의사상자, 국가사회공헌자 등 여러분들이 계신다. 국가원수 가운데 최규하 전 대통령도 계신다.

▲ 지난해 재부임하셨는데 국립대전현충원과의 인연은

제가 국립대전현충원과는 너무도 연이 깊다. 2007년 8월 16일에 관리과정으로 부임했으니까 벌써 만 9년 가까이 된다. 그 기간 동안에 정식적으로 원장을 두 번을 하고 직무대리까지 포함을 하면 세 번이고 현재 네 번째 하고 있다.

또 그 기간 동안에 대전지방보훈청장 35대 기관장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9년 동안에 이곳 대전에서 다섯 번의 직책을 갖고 있었고 여기를 떠나면 본부, 본부를 떠나면 대전 그래서 여기에 오는 연이 깊어서 히스토리를 거의 다 알고 있다.

▲ 국립대전현충원은 연간 25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 보훈둘레길 8.2킬로미터가 완공됐다. 그 의미는

보훈둘레길을 7단계로 나눠서 만들었다. 그것을 지난해 11월 13일에 국립대전현충원 준공 30주년과 더불어서 최종 완결했다. 그런데 보훈둘레길을 맨 처음 시작한 것은 2007년 9월 22일에 당시 이동원 원장께서 그때 보훈산책로로 출발했다.

그런데 1.2킬로미터를 만들어 놓고 거의 현충원 초반 입구에만 있다 보니까 잘 활용이 되지 않았다. 저희가 그것을 2009년 12월 16일에 2단계, 2010년 11월 6일에 3단계, 그 후에 4~7단계를 지난해에 완결지었다.

쉽게 말해서 지하철도 1호선만 있으면 이용객이 적다. 2호선 3호선 환승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보훈둘레길도 초입부분만 있었던 걸 완전히 써클 형태, 순환형태로 만들어 놓으니까 참 의미가 깊다.

보훈둘레길을 만드는데 하나의 또 의미를 부여한다면 우리가 예산사업으로서 미리 책정을 해서 몇 천만 원, 몇 억 원 그렇게 들어간 게 아니고 일상 경상비로 해서 우리직원들의 정성을 모아서 만든 것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의 세금을 소중히 사용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보훈둘레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는 가운데 이 둘레를 걷다보면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생활 속의 보훈정신의 하나가 뭐냐면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국립대전현충원 안장된 기수와 위패로 모셔져 있는 11만 7000여기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현란한 말이 아니다. 실천과 행동이다.

특히 나라가 어려웠을 때 그런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똑같이 한다면 저희가 목숨까지 잃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분들의 정신에 다만 1/100, 1/10000 이라도 감사한 마음만 가져도 큰 보답이 될 것이다.

보훈둘레길 산책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13일에 동시에 7단계를 자연미를 풍긴다는 측면에서 무지개색깔을 넣어 빨강길, 주황길, 노랑길 등을 조성했다.

▲ 원장께서 특히 열린현충원, 밝은현충원을 표방하면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변화를 주는 방향이 있다면

국립대전현충원이 36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저희가 꼭 10년 1개월이 됐다. 2006년 1월 30일자로 주관부처가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넘어왔다.

국방부에서 할 때만해도 경비가 헌병이라든가 군인들이 서 있었기 때문에 대전시민들 가운데 가끔은 대전현충원을 가도 돼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모토가 열린현충원, 밝은현충원이다. 국민누구든지 언제든 오시든 대 환영이다.

묘지라는 게 어둡고 근엄하고 무거울 수가 있는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건성만 유지가 된다면 그들의 정신을 살려서 액티브하고 다이나믹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곳을 유족분들 또는 직간접으로 관련된 분들뿐이 아니고 전혀 모르는 분이 있더라도 국민 누구든지 이보다 좋은 호국공원이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 특히 유치원 원아들이 노란 옷을 입고 또 유치원차도 노랗고 올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저는 안장식을 통해서도 그런 말을 한다. 아기들이 가끔 울고 떠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안장식이라 하면 국립대전현충원의 가장 핵심 브랜드인데 제가 항상 묵념하기 전에 인사말을 통해 이야기하는 게 아기들 소리는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대전광역시의 가장 대한민국의 자랑이 국립대전현충원이다. 그러므로 해서 과학연구단지도 있고 다른 것들도 발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이번에 새로 지정된 서해수호의 날에 대해

서해수호의 날 그 최전방이 NLL 즉 북방한계선이다. 육상에는 155마일 휴전선을 MDL 군사분계선이라 한다. 2002년 6월 29일에 제2연평해전이 있었다. 그때 윤영하 소령님을 비롯해서 한상국 상사님, 조천형 중사님, 황도현 중사님, 서후원 중사님, 박동혁 병장님 등 6명이 전사했다. 이분들이 그 당시만 해도 네 곳에 묘지가 산재돼 있던 것을 지난해 9월 21일에 한 곳으로 합동 묘역을 조성했다.

천안함 묘역 같은 경우는 천안함 46용사님들이 2010년 3월 26일에 전사했다. 그 분들이 이곳 국립대전현충원에 4월25일에 안장됐다. 멋지게 묘역이 조성됐다.

그로부터 약 8개월 후인 11월 23일에 연평도 포격전에 서정우 하사님, 문광욱 일병님 묘소가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참배객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연평해전 묘역조성하면서 거의 같은 시기인 지난해 11월 16일에 또 별도의 묘역을 조성해서 이곳에는 한주호 준위님까지 포함해서 55명의 용사님들이 모셔져있는 호국공원이다.

그러다보니까 저희가 평시의 전사자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5주기까지이다.

천안함이나 연평도포격전이 지난해에 종료가 됐다. 그래서 NLL 최전방에서 전사하신 분들을 합동으로 같이 추모하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지정됐다.

천안함 46용사들이 전사한 날이 바로 2010년 3월 26일 즉 넷째 주 금요일이다. 그래서 서해수호의 날을 네 번째 금요일로 정해서 오는 3월 25일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에서 의미 있는 추모식과 더불어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된다.
 

▲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 [사진=모석봉 기자 ]


▲ 평상시 업무는

국립대전현충원의 핵심기능은 안장과 참배이다. 저는 현충원에 근무하면서 제일 핵심의 고유 브랜드가 바로 매일 열리는 합동안장식이다. 하루에 평균 11명의 유공자분들이 들어온다.

1년에 약 4000기 정도가 이곳에 안장된다. 저희는 매일 오후 2시에 합동안장식을 거행하고 있다. 저는 합동안장식에 매일 토요일 일요일도 포함하고 공휴일도 포함해서 안장식에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저는 참석 할 때마다 오늘 처음으로 참석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 말 그대로 그분들이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했던 정신을 안장되기 직전에 최후로 드리는 최상의 예우서비스를 하고 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게 의례적인 행사, 매일같이 이렇게 한다고 하지만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원장직무의 50%이상을 합동안장식 주관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참배이다. 43미터 높이에 폭이 110미터 되는 현충탑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해 예를 표하는 것, 그것은 의례적으로 정초에 6월호국보훈의 달 이런 때만이 아니라 1년 내내 그래서 저는 많은 민간기업 이라든지 사회단체, 학생들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 대한민국은 더욱더 밝아지고 분단조국의 통일을 이뤄가면서 선진조국으로 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 방문객에게 한 말씀

우리 현충원을 많이 사랑해주시는 대전 시민, 또 대한국민 국민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국립대전현원이 지향하는 열린현충원, 밝은현충원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업무를 추진하는데 3대 원칙의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즉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이곳에서 안장되고 위패로 모신 영령들을 볼 때 말이 아니고 바로 실천과 행동이다. 역사의 책임의식을 갖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최고의 호국공원인 만큼 예산 한 푼도 아껴가면서 이곳을 최고의 호국공원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더욱더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또 시민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저희들이 잘못했을 때 지적해주면서 갈 때 우리 국립대전현충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호국공원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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