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정인영 “나도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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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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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21)

운곡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자[사진=한라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행운아다. 많은 사람은 넘어진다. 나도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을 뿐이다.”

운곡(雲谷)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자의 이 말은 어떤 시련에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한국 기업가 정신을 잘 보여준다.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손아래 동생인 운곡은 형을 도와 현대그룹이 기반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동 진출건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자 1976년 현대양행을 갖고 독립했다.

현대양행은 1962년 설립 후 운곡이 실질적으로 이끌던 종합기계업체였다. 그는 국제개발처(AID) 차관을 얻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제철부터 플랜트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진 보스턴, 피츠버그의 첨단 기계공업 현장을 보고 “중공업 개발없이 경제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현대양행을 탄생시켰다.

초기에는 포크나 나이프 등 양식기류를 생산하다 1968년 해운사업부를 신설하고, 이듬해부터 자동차 부품 생산에 주력해 프레스 부품과 히터, 엔진 라디에이터와 같은 기능 부품들로 제품선을 확대했다. 1971년에는 운곡이 아메리칸 호이스트 앤 데릭을 방문해 기술제휴를 맺고 트럭 크레인을 국내 생산했으며, 1974년에는 포크레인, 불도저, 모터그레이드 등의 건설 중장비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한라’라는 상표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현대양행으로 홀로서기에 나선 운공은 1976년 창원공장(현 두산중공업) 건설을 시작했다. 창원공장 건설계획은 수력·화력·원자력 발전용 설비제작부터 제철·석유화학·시멘트·해수담수화 관련 설비까지 총망라하는 대공사였다. 그러나 1980년 중화학공업의 난립을 재편하겠다는 신군부에 의해 현대양행 창원공장과 군포공장을 ‘강탈’당했다. “내 꿈의 모든 것인 중공업의 터전을 빼앗았다. 그래서 나는 저항했다. 꿈을 빼앗긴다는 사실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는 운곡의 말 속에 당시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절망했으나 좌절하지 않았다. 운곡은 압구정동 배나무밭 사이에 있는 자택을 베이스 캠프로 18명의 임직원과 재기에 나서 한라그룹을 일으켰다. 현대양행을 빼앗긴 뒤 10년만인 1989년 한라그룹 매출액은 1조원에 육박했다. 그런데 그 해 7월 운곡은 두번째 시련을 맞이한다. 돌연 뇌졸중으로 쓰러져 좌반신 마비와 언어장애에 빠진 것. 워낙 증세가 심각해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운곡은 “병을 이기는 것도 사업”이라며 다시 일어섰고, 휠체어에 앉아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휠체어 부도웅’‘재계의 부도웅’이란 별칭을 붙여줬다.

한라그룹은 만도기계의 비약적 성장을 바탕으로, 1997년 재계 1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해 발발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한라그룹은 부도를 맞았다. 운곡은 그룹을 살리기 위해 1999년 모태기업인 만도기계를 매각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한라그룹을 되살린 그는 2006년 7월20일 별세했다. 한라그룹은 2008년 3월 만도기계(현 만도)를 되찾았다.

‘만도(萬都)’는 운곡이 재기 의지를 담아 직접 지은 단어로, ‘인간은 할 수 있다(man do)’는 뜻과 ‘1만 가지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한라그룹과 만도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기술확보 뿐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지상(技術至上), 기술로 승부하라!”라는 구호는 한라그룹 경영철학으로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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