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좌회전 금지 해제’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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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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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병진<숭실사이버대 법·행정학과 교수>

 

                              나병진 교수




“제도·관습을 갑자기 변경하면
아마추어들만 손해보기 십상

도로는 질서 지킬 때만 편리
얌체족 따라했다간 낭패당해”




서울 강남 삼성역 네거리에 좌회전 금지가 해제됐다. 대치동에 가려고 잠실에서 직진하여 유턴하는 번거로움없이 바로 좌회전 차로에 대기했다가 가게 돼 편리해졌다.

그런데 웬걸…. 신호가 두 번 바뀌어도 차로에 차가 줄지 않는다. 내가 맨 앞 차례가 됐다. 다시 신호가 바뀌어 좌회전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직진 차로에 있던 버스가 먼저 좌회전했다. 급브레이크를 밟고 식은땀을 흘리며 ‘어! 2차로도 좌회전 차로인가?’고 살펴보니 아니다. 빵! 뒤차의 경적에 정신을 차려 좌회전을 하니 네거리 가운데를 지나는 찰나 다시 노란 불이다. 이번 신호에도 나를 포함해 좌회전 차로에 있던 차 두 대만 갔다.

아 하! 이래서 좌회전 차가 줄지 못했구나. 앞서가는 노선버스를 흘겨보며 운전사에게 무언의 질문을 해본다. ‘아저씨. 직진 차로에서 좌회전하면 어떻게 해욧!’ 역시 무언의 답변이 돌아온다. ‘우리는 매일·매시간 여기를 지납니다. 좌회전 차로에서 대기하다 보면 지체돼 승객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여기를 오래 다녀봐서 타이밍을 압니다. 직진 마지막 쯤에 서있다 죄회전하니 교통에도 그렇게 무리를 주지 않지요. 그러고 원래 여기는 노선버스 전용 좌회전 차로에요. 한가한 자가용 차들이 양보해 주셔야죠….’ 내 한마디에 줄줄이 항의성 답변이 돌아온다.

다음 날, 또 이곳을 지났다. 마침 직진 신호다. 2차로 직진신호를 속도를 줄여 통과한다. 네거리 초입에 오니 신호가 바뀐다. 좌회전 신호다. 찬스다. 사주경계해보니 경찰이 안 보인다. 잽싸게 좌회전한다. 좌회전 차로에서 나오려던 차가 나의 공격적 좌회전에 움찔한다. 나는 어제 그 버스 기사처럼 씨익 웃으면서 좌회전을 완성한다. 한 번의 견학으로 직진차로에서 속도를 줄이다 타이밍맞춰 좌회전에 성공했다. ‘그래, 내 운전실력 녹슬지 않았어. 개인택시 면허 신청할 만큼은 되지’. 흐뭇했다.

오후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탄천 다리를 건너다 연료 게이지를 보니 노란 불 직전이다. 배명고앞 셀프 주유소 쪽으로 가려면? 그래, 아침에 배웠던 ‘슬로 슬로 퀵’ 운전법의 응용이다.‘이번에는 우회전 해야지’. 2차로에서 3차로로 싹 틀었다. 그 순간 뭔가 휙 지나간 듯하다. 부웅, 끼이익…. 어, 사곤가?

차를 세우고 보니 오토바이가 저 앞에 서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가죽잠바에 빨간 머리수건을 했다. 추운 날씨에도 반팔차림이다. 팔에 문신도 보이고 근육질 알통도 위압적이다. 서부의 건맨처럼 오토바이를 세우고 한걸음한걸음 다가온다. 어둑어둑해진데다 차도 많지 않다. ‘나, 이제 어쩌지?’ 집에 전화? 119? 112던가? 덩치가 내게 다가오는 그 시간이 되게 길다. 문을 두드린다. 차창을 조심스럽게 내린다. “저, 죄송합니다. 잘 안 보여서…”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그런데, 그가 “아저씨 롯데월드는 어느 길로 가야 해요?”라고 묻는다. 휴! 다행이다. 공부는 아무나 하나…. 아침에 배운 것 응용하다가 큰 일 날뻔했다.

애꿎은 버스 기사 스승님에게 항의성 독백을 날린다. ‘아저씨, 그게 아니잖아요. 좌회전 허용했다고 직진 차로에서 좌회전하니까 나처럼 철없는 아마추어 운전자가 따라하다가 골로 갈 뻔했잖아요. 누가 운전실력이 없어서 질서 지킵니까? 애들이 본 데서는 찬물도 함부로 마시지 않는다잖아요. 도로질서가 엉망이 되면 사고가 많이 나고 교통은 더 혼잡해지고…. 제일 손해보는 사람은 도로에서 오래 일하는 아저씨잖아요.’

듣지도 않을 사람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아니,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해? 씻고 식사해요.” 정신차려 보니 마눌님 안전이다. 그래, 무엇이든지 익숙한 것이 좋다. 시간이 걸려도 내일은 지하철을 타야지. 괜히 차 가지고 나갔다가 이 무슨 망신인가. 다 잊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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