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과학과 찰떡궁합...세계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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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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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대문자 예시. [사진=고창수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제공]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슬기로운 이는 아침을 마치기 전에,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는 나와 있는 글귀다. 세종대왕은 1446년 훈민정음 창제 사실을 알린 뒤 집현전 학자들과 창제 목적과 글자의 원리를 설명한 한문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냈다. 그 시절 어렵고 글자 수도 많은 한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극히 적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자신의 의사 표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세종대왕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만들었다. 오로지 백성을 위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글은 쉽다.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고 글자의 기본 원리만 알면 누구든 읽고 쓰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 유네스코의 문맹퇴치 상 이름도 ‘세종대왕상’이다.

한글의 과학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글 자모 24자만 알면 1만1172글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는 음절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서 가능해졌다. 한 음절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약 200여 개의 기호로 1만개 정도의 음절을 구별할 수 있다. 한자는 음절을 두 부분으로밖에 나누지 못 한다. 고창수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교수에 따르면 한 음절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과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東’이라는 글자는 ‘동(tong)’이라는 하나의 음절을 갖는다. 반면 한글에서 한 음절 ‘동’은 ‘ㄷ+ㅗ+ㅇ’의 세 음소로 나뉜다.

고 교수는 “음소라는 존재론적인 단위를 추상적이며 변별적인 단위로 분석하는 방법은 서구의 언어학사에서도 20세기 후반기로 들어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라며 “15세기에 이미 이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문자 발명에 응용한 세종대왕의 독창성은 시대를 초월한 과학 정신의 승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이 된 것도 한글 덕분이다. 피처폰을 쓰던 시절, 삼성전자가 내놓은 ‘천지인 방식’이나 엘지전자가 적용한 ‘가획 방식’으로 문자메시지를 쓰면 한글로 쓸 때 영어로 쓰는 것보다 속도가 3배 빨랐다. 당시 삼성전자는 ‘천지인 방식’을 국제 특허를 따놓은 상태였고 빠른 한글 입력 방식을 사용하지 못한 외국 기업의 휴대전화는 자연히 국내 시장에서 힘을 잃어갔다. 고 교수는 “문자 보내기가 편하다보니 전국적으로 휴대전화 사용량이 급속하게 늘었다”며 “이에 따라 국내 대표적인 휴대전화 생산 업체들은 내수시장에서 확보한 여력으로 세계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키보드 자판 구조도 한글을 쓸 때 더 쉽게 다룰 수 있다. 고 교수는 “키보드 자판 구성을 보면 자음 14개 키는 왼편에 모음 12개 키는 오른편에 배당돼 있는데 자음과 모음이 연속돼 있는 한국어 음절 특성상 인체공학적으로 자판을 이용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글날이 올해로 569돌을 맞았다. 한글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외계어’나 무분별한 줄임말 등 언어 파괴가 일어나고 심각하게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속어, 채팅어 등이 난무하면서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의사 소통에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글이 글로벌 환경에서 세계인 누구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로 거듭나기 위해 현 사회에 적합하고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 교수는 한글의 가독성을 높이고 사이버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한글대문자’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영어의 대문자처럼 현재 단층 구조의 한글 사용을 복층 층위로 전환해보자는 것이다. 한 문장 중에서 강조하고 싶은 단어의 크기를 키우거나 진하게 만들어 가독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고 교수는 “한글대문자의 사용은 현재 사이버 환경에서 특히 널리 유포되는 축자 혹은 초성 사용을 안정화 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과거 문자메시지 확산을 통해 정보통신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경험을 재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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