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사력 대해부 9] 북한 전담 '장백맹호', 한반도 유사시 첫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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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3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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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전후해 남북한 군사적 대치 국면 와중에 분명히 드러난 사실 중 하나는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은 북한의 지난 20일 있었던 '연천 포격 도발'과 남측의 확성기 대북 방송 등 일련의 대치 과정 속에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바로 중국의 대축제, 중국 전승절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이런 행보가 열병식 행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전 세계가 보는 중국의 경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이같은 분위기를 환기하고 '막강 중국'을 과시할 만한 기회는 열병식 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북·중 관계의 악화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 도발 강행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조선족자치지역인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을 방문하고 곧바로 창춘(長春)에 사령부를 둔 인민해방군 ‘제16 집단군’을 방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북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던 것으로 읽힌다.

중국 '선양군구(沈阳军区)'중 특히 '장백산 호랑이 부대'로 불리는 '장백맹호(長白猛虎)'인 제 16집단군은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가장 먼저 투입될 부대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이 같은 행보야말로 북이 핵 도발을 벌일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풀이했다.

◆북한 전담부대 '장백맹호'

시 주석은 7월 16일부터 28일까지 12일 사이 길림성과 요녕성의 핵심 도시 3곳을 차례로 방문했다.

순서대로 보면 △7월 16~17일 오전 연변 △7월 17 오후~18일 장춘 △7월 27~28일 심양 방문 순이다. 이 중 첫 번째와 세 번째 방문 내용은 국내 언론에 자세히 보도됐다.

그러나 중간 방문지인 장춘에서의 활동은 국내에 간단히 사실만 보도되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서상민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에 따르면 7월18일 시 주석이 시찰한 제16집단군(장백맹호)은 선양군구 3대 집단군 중에서도 북한을 전담하는 부대다.

'장백산호랑이 부대'라고도 불리는 이 부대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백두산을 작전구역으로 두고 있다.

이 부대의 사령부는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 진입해 대공수과 상륙저지 임무를 담당했다는 게 서상민 HK연구교수의 설명이다.

이 부대는 선양군구 소속 39·40집단군과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휴전협정 5년 뒤인 1958년 4월에야 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즉 한반도에 관한 군사정보를 가장 많이 축적한 부대라고 할 수 있다.

16집단군은 올해 1월7일 눈 덮인 백두산에서 동계전술훈련을 벌이기도 하는 등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투입될 부대로 시 주석이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시 주석의 군부대 방문은 결국 북한 돌발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태세를 강조하기 위해 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국민대 연구팀의 설명이다.

가령 최근 북한 권력 내부상황이나 국경지대 북한군 동향, 주민동향, 경제상황, 유사시 군사작전 등에 대해 시 주석이 이 부대에서 논의 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제16집단군 군단장은 전 지난군구 제26집단군 군단장이었던 탄민(譚民) 소장이다. 제16집단군 역대 군단장 출신이 출세한 사례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현 중앙군사위 부주석인 판장롱(范长龙) 상장이 있다.

판 부주석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 군단장으로 있었으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이자 후진타오 전 주석의 심복인 쉬차이허우는 1990년에서 1992년까지 이 부대를 지휘한 후 중앙으로 진출했다.

정치위원은 루샤오핑(盧少平) 소장이다. 오랫동안 광저우군구에서 부대 내 당 정치업무를 담당해 오다 2015년 2월 제16집단군으로 옮겨왔다.

◆ 제16집단군 & 제39집단

선양군구 중 시진핑의 직계부대이자 한국전쟁에 곧바로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제39집단군은 65521부대라고 하는데, 선양군구의 주력부대로 기계화부대이다.

서상민 교수는 "이 부대는 항일전쟁 시기 신4군 3사단에 뿌리를 두고 있고, 중국의 국공내전 시기에는 동북야전군으로 공산당의 주력야전부대였다"고 말했다.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1949년 이후 인민해방군 제39군으로 재편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전쟁에 투입돼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다는 것.

또 정전협정 후에는 요동반도에 주둔하면서 소련과의 남하를 막고 한반도정세에 대처하는 임무를 맡았다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9년 6.4 천안문사건이 발발했을 때도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중국 현대사에 있어 큰 획을 그은 부대라는게 서 교수의 설명이다.

39집단군은 베이징군구의 제38집단군, 지난군구의 제54집단군과 함께 중국군 내 3대 신속대응부대로 중국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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