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달 쫓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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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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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기환 지음 | 청어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며 아버지는 플랫폼 건너편으로 힘들게 넘어가 귤을 사 온다. 이윽고 기차가 출발한다. 초라한 장삼 자락에 낡은 마고자를 걸치고 인파 속으로 쓸쓸히 사라지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애잔하다.

중국 작가 ‘주쯔칭’의 ‘뒷모습’ 내용이다. ‘달 쫓는 별’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 뒷모습도 그렇다. 유라시아 횡단 여행가 남기환 작가가 중년의 초보 작가로 장편 소설 ‘달 쫓는 별’을 출간했다. 대륙 횡단 여행가로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며 다져온 내공을 이번에는 소설가로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달 쫓는 별’은 고단한 삶을 헤쳐 나가는 부자의 아픈 정감이 절절히 스며있다.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달 쫓는 별’ 속에 아버지는 훌륭하거나 그렇지 못한 인생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식하거나 유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마음이 한 편의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복잡한 세상을 사는 중년의 초보 작가에게 아버지의 삶은 한편의 동화고 가슴에 품은 희망이고 꿈이다. 작가는 지금 이 순간을 당당하게 헤쳐 나가는 모습, 그리고 인생의 끝자락에 만나게 되는 그 뒷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별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한 편의 책이 된다고 말한다.

‘달 쫓는 별’은 아버지와 보낸 시절을 그려낸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다. 공간적 배경은 1960년대 수출주도형 공업화가 추진되면서 대규모 이농현상으로 인해 관악산 산비탈에 형성된 산91번지다. 그곳에서 작가의 유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시무시한 바위 절벽에 손바닥만 한 틈바구니가 있다. 벼랑으로 몸을 기대면 몸뚱어리 하나 의지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그곳에 새처럼 웅크리고 앉아 고개만 들면 위험에 빠트리지도 않고 마을도 훤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그곳에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손을 흔들면서 꿈을 꾸고 멀리 도심을 발아래에 두고 아찔아찔할 한 기분과 안락하고도 평온한 마음을 동시에 맛본다. 그곳은 주인공 두호의 보금자리다. 거기서 자연을 품고 유년을 보낸 자신을 행운아라 여긴다.

그러다가도 집단본성에 잠재한 권력욕과 야만이 풀어헤쳐진 소식들을 접할 때면 진저리쳐지는 곳이다. 무한히 품을 수밖에 없었던 천국이었고 때로는 지옥이었다. 꿈을 꾸게 한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어느 순간 마을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성장의 진통을 겪고 영혼이 움튼 곳임에는 틀림없다. 이야기 속에는 화병 속 꽃처럼 정물의 고요도 없고, 추억에 젖어들게 하는 아름다움도 없고, 초콜릿처럼 달콤한 이야기도 없다. 그 어떤 가슴으로도 품어낼 수 없었던 7, 80년대 산동네 사람들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모습들이 현기증처럼 어지럽다. 그 어두운 삶의 행로를 따라가면서도 인간다움과 행복을 염원하는 또 다른 심연의 인간 군상들이 활어처럼 펄떡거린다.

비록 산 91번지는 재개발로 끝내 사라졌지만, 무시무시한 칼날 같은 바위 아래 앉아 비행기에 손을 흔들고, 발아래 펼쳐진 수다스러운 동네를 바라보던 유년의 보금자리는 여행가인 두호작가에게 비행기 좌석에 앉아 다채롭게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지금도 ‘영혼의 안식처’나 다름이 없다.

아버지도 떠나고 없지만, 그 시절 그때 만나게 된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복잡한 사회에서, 여행가이자 초보 작가에게 끊임없이 달라붙는 욕망과 의심과 불만을 내려놓게 하게 하는 ‘영혼의 자서전’과 같다. 복잡한 사회에서 몸부림치는 작가 자신의 순수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자기 성찰이고 반성이고 다짐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혹여 복잡한 세상에서 상실과 고독에 지친 독자들이 있다면 ‘달 쫓는 별’을 통해 안식과 위안을 얻게 되기를 바라며, 또한 다양한 군상들의 질곡을 음미하고 맛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판을 두드렸다고 한다. 352쪽 | 1만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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