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메르스를 막아라](下) ‘감염병 정보 공개’ 보건행정 근본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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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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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대청병원에서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방역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아주경제 DB]



“오해·억측방지…효과적 정책”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 당부

역학조사관 등 전문인력 육성
합법적인 조사 권한 확대해야

공공병원 음압격리병상 24곳뿐
정부, 공공의료체계 개혁해야

아주경제 조현미·한지연·이정주 기자 = 감염병의 국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국제교역과 여행 증가 때문이다. 해외에서 처음 등장한 감염병도 언제든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제2, 제3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막으려면 감염병 대응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내·외 감염병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정부의 감염병 정보 공개, 감염 전문가 양성이다.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18일 방한해 “감염병에 있어 투명한 정보 공개는 대중의 억측과 오해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어떤 정책보다 좋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많은 사례를 봐도 그렇고 내 경험에 비춰봐도 그렇다”면서 “한국 정부도 이런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챈 사무총장은 감염병 대응 전문가다. 의사 출신인 그는 30년 이상 고국인 홍콩에서 보건 행정가로 일했다. 1994~2003년에는 홍콩 위생국장으로 재직하며, 조류인플루엔자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유행 차단의 핵심 역할을 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WHO 감염병 전문가들은 국가 보건의료 수준과 상관없이 감염병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응할 전문가 육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CDC는 “신종 감염병은 의료기관이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병원에 감염전문가가 상주해 감염병 확산을 차단하고, 의료진을 감염병으로부터 보호할 교육·훈련을 담당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와 함께 “감염병 유형별로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 훈련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감염병 정보와 대응법을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 정부에 건의했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 선별진료소 앞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남궁진웅 기자 timeid@]


역학조사관 전문성을 높이고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 발생 원인을 파악하는 ‘질병 수사관’이자 질환 확산을 막는 ‘방역 전문가’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의대 졸업생이나 공중보건학 석사 이상의 자격이 있는 사람을 2년간 교육시킨 후 역학조사관 자격을 준다. 동시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다.

반면 국내 역학조사관 34명 중 32명은 군 복무를 대신해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다. 감염병 확진자에 대한 개인정보 접근 권한도 없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은 “훈련된 전문 정규 역학조사관이 필요하다”면서 “역학조사관에겐 신용카드 이용내역,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대한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의 환자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환자 쏠림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지금까지 발생한 메르스 환자 대부분은 대형병원에서 감염되거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국내 초대형 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2차 유행의 진원지가 됐다. 경기도에서 시작된 메르스가 서울·대전·부산 등 전국으로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환자 쏠림 현상의 주된 원인은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의 진료비 차이가 크지 않은 데 있다.

김태형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학술이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내 의료기관 비용 덕분에 환자들은 손쉽게 병원을 찾는다”며 “낮은 수가(의료서비스 대가)는 동시에 과잉 진료를 부추겨 '의료쇼핑'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폐쇄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이 텅 비어있다. [남궁진웅 timeid@]


WHO도 의료쇼핑을 국내 메르스 확산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했다. WHO는 한국을 직접 찾아 이달 9일부터 엿새 동안 우리 정부와 함께 메르스 사태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합동평가단 공동단장인 케이지 후쿠다 WHO 사무차장은 한국에서 메르스가 유독 빨리 확산된 데 대해 “전염성이 더 강한 바이러스로 변이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서 “한국 사회에 특정 관습과 관행이 빠른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후쿠다 사무차장은 “치료를 받으려고 여러 군데의 의료시설을 돌아다니는 의료쇼핑 관행이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하고 “여러 친구나 가족이 병원에 동행하거나 문병하는 문화로 감염이 더 확산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술한 공공의료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공공의료의 기능과 지원을 줄이는 바람에 신속한 감염병 대응이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메르스 사태해결을 위한 긴급과제’ 보고서를 보면 현재 국가지정 입원병원의 음압격리병상은 105개, 34개 지역거점 공공병원 중 음압격리병상을 갖춘 곳은 24곳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일부 메르스 환자는 민간병원을 이용해야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국립중앙의료원에 감염병 전문센터를 설치하고, 국가중앙병원과 재난병원의 역할을 동시에 맡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국립의료원을 중심으로 한국원자력의학원(원전사고), 국군수도병원(생물학전), 경찰병원(테러) 등 특수목적 공공병원의 협력체계도 구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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