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씨 호남선KTX역 신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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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1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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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KTX(위)와 전라선이 동시 교차하는 김제시 백구면 부용리 목과동마을 인근[사진=박래윤 사진작가]


아주경제 최규온 기자 =이제는 도로가 아닌 철도시대다. 그것도 시공을 넘나들며 속도혁명을 재촉하고 있는 고속철도시대다. 1932년 처음 개통된 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퀼른~본) ‘아우토반’이 한 시대의 산업을 견인했다면 지금은 고속철도가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지난 1981년 파리~리용 간 떼제베를 개통한 프랑스는 고속철을 내세워 국제 상업 중심 국가로 급부상했다. 독일 역시 고속철도인 ICEs 개통 후 철도 점유율이 1.86% 정도의 미미한 수준에서 28.2%로 급증했다.

도로는 이미 포화상태다. 속도에서 현저히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이 막대하고, 안정성이나 에너지 효율, 친환경적 측면에서도 도로는 철도에 비할 바가 안 된다. 고속철도가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동북아 경제 허브 꿈꾸는 전북 KTX시대 의미 각별

지난달 2일 우여곡절 끝에 서울~광주 간 호남선KTX가 착공 6년 만에 완전 개통됐다. 호남선KTX는 호남선과 경부선이 갈리는 충북 오송역을 분기점으로 남공주~익산~정읍을 거쳐 광주 송정역까지(182.3km) 이어진다.

서울(용산)에서 광주까지 최고 1시간 33분대면 주파한다. 익산까지는 기존보다 약 45분여 가량 단축된 1시간 10분(70분)대면 도달한다.
 

▲충남 남공주~익산~정읍을 거쳐 광주 송정역까지 이어지는 호남선KTX [자료사진]


수도권 거주자들이 서울로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76분이라는 어느 보고서대로 라면 서울~익산은 출·퇴근이나 통학도 가능한 사실상 동일 생활권으로 좁혀진 셈이다. 육상에서도 항공 부럽지 않은 속도혁명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만금 개발을 기점으로 동북아 경제 허브를 꿈꾸는 있는 전북으로서는 KTX시대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뭐 하나 변변하게 내세울 것 없는 전북이기에 비빌 언덕이라도 있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KTX 개통을 계기로 새로운 성장 동력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KTX를 온전히,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잖이 고민해야 할 사안,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그중 하나가 호남선KTX역 위치다.

전북지역에서 ‘호남선KTX 역사 신설’ 문제가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로 회자되고 있는 것도 KTX시대가 가져다 줄 막강한 폭발력 때문이다.

◇도 소재지인 전주 전라선 하나가 고작

현재 전북지역에서 호남선KTX가 정차하는 곳은 익산과 정읍역 두 군데. 이중 익산역이 논란의 대상이다.

익산역은 호남선 외에 전라선, 장항선이 지난다. 익산은 전북 철도교통의 요지이자 관문인 셈이다. 명색이 도 소재지라는 전주에는 운행 횟수가 현저히 적은 전라선 하나가 고작이다.

전주는 인구 규모가 익산의 2배이고, 기관의 태반과 상권이 집중돼 있다. 교통은 인구나 도시 규모와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전북지역 철도 선로 구도는 상식에 역행하는 측면이 다분하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이다.
 

▲전주역 전경[자료사진]


처음 호남선 철도가 계획될 당시 전주는 지역 원로와 유림 등을 중심으로 호남선 통행을 극렬히 반대했다. ‘문화와 전통의 도시’에 걸맞지 않다며 호남선 전주 통과를 결사적으로 틀어막았다. 군부대인 상무대 역시 같은 이유로 거부하는 바람에 광주로 장소를 옮겼다.

혹자들은 이 두 가지의 뒤틀린 판단이 전주의 미래 발전을 뒷걸음치게 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고 애석해 하고 있다. 특히 호남선 철도가 그렇다.

그로부터 시대상황은 몰라보게 변했다. 변화의 속도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변화의 중심엔 ‘꿈의 고속철도’로 불리는 KTX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전국 곳곳이 KTX망으로 연결되면서 지역 간 경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때문에 각 자치단체들마다 KTX 노선과 활용방안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 전남·북지역에서 호남선KTX 서대전역 경유나 KTX 논산역 신설 등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KTX혁신역사설립추진위원회 시민 서명 운동 전개

지난해 9월 전북지역 법조계와 정·재계, 사회단체 인사들이 중심이 된 'KTX혁신역사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창립도 이 같은 시대환경과 KTX시대가 가져다줄 미래의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수십 년 전의 과오(상무대·호남선 전주 외면)를 또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담겨 있다. 추진위는 현재 새로운 역사 설립을 위한 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전북지역 호남선KTX역사 적지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고 있는 김제시 백구면 부용리 일원[사진=박래윤 사진작가]


교통의 필요충분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풍부한 유동인구와 편리한 접근성이다. 전북지역에서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합당한 곳이 어디인가에 대한 의견은 지금도 분분하다.

호남·전라·장항선 철도가 지나는 익산시가 전북도내 철도교통의 중심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인구 30만의 익산시에 철도교통이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북도 전역으로 볼 때 경제성과 접근성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익산시에 국한된 호남선KTX역을 도민 다수가 이용하기 편리하고, 불필요한 시간적·경제적 낭비를 줄이며, 전북의 미래 발전 가능성까지 담보할 수 있는 곳에 새로 설치하자는 주장이 도민들 사이에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추진위의 주장도 도민들의 그 같은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

완주군의회 김용찬 부의장도 추진위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김 부의장은 “전주·완주 통합보다 오히려 새로운 KTX역사 설치 문제가 더욱 중요하면서 선결 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호남선 KTX역은 당연히 전북권 주요 도시를 고루 아우를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해야 옳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부의장은 지난해 11월 군의회 임시회에서 ‘완주혁신도시 인근 KTX역사 이전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고, 의회는 이를 채택한 바 있다. 당시 완주군의회는 건의안에서 “새만금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익산을 포함 전주·군산·김제·완주·부안 등을 아우르면서 대동맥 역할을 할 전북 교통망체계 구축이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됏다”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전북 혁신도시와 새만금의 중심 지역인 이서(전북)혁신도시 인근에 신 KTX역사를 설립하고 복합역사 환승센터와 컨벤션센터 등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지역 경제 활성화의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까지 KTX나 고속버스나 시간 엇비슷

교통 요지의 주요 조건은 접근성과 편리성, 경제성 등이다. 전주의 예를 들면, 익산 호남KTX을 이용할 경우 전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익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나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익산역까지 가야한다. 전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익산역으로 가도 KTX 호남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KTX역까지 이동에만 40분∼1시간 정도가 걸린다.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이 동시 지나는 익산역 전경[사진제공=코레일]


익산역에서 서울(용산)까지 KTX로는 1시간 10분 정도, 전주에서 서울까지 고속버스로는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전주를 기준으로 할 때 이동시간을 포함하면 서울까지 KTX나 고속버스나 시간 상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전주~익산역 간 대중교통 증차 및 노선 개편 등으로 접근성 향상을 꾀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다양한 연계교통망 구축은 두고두고 골칫거리로 남을 게 뻔하다.

허남주 전북도의원은 최근 전북도 업무보고 자리에서 “전주시민은 서울을 가기 위해 익산역을 거쳐서 갈아타야 하는 시간적·경제적 불편으로 대부분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있다”며 이용자들의 애로사항을 대변했다.

익산역의 비좁은 주차장도 고민거리다. 익산역 동편에 현재 운영 중인 주차장 113면 외에 역사 뒤쪽 서편에 주차장 372면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지만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도심 한 복판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주차장을 무한정 확장할 수도 없다. 그러자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다.

◇익산역 민자유치 실패 복합환승센터 건립 무산 위기

익산KTX 역세권 개발사업의 일환인 복합환승센터 개발도 사실상 중단됐다. 복합환승센터는 열차와 항공기 등 교통수단 간 원활한 연계 및 환승·상업·업무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시설을 한 장소에 모아놓은 곳이다. 역세권 개발의 중추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익산역 주변 복홥환승센터 조감도[자료사진]


익산시는 당초 호남선KTX 완전 개통에 맞춰 복합환승센터까지 갖추려했으나 민자유치를 하지 못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총 2,2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복합환승센터 개발에 지금은 누구 하나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 엄청난 사업비를 감수해야 할 판에 인구 30만의 중소도시에서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 상인들의 반대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래저래 익산역은 전북권 철도교통을 포괄적으로 수용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개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킬 만한 요인도 현재로선 불분명한 상황이다. 익산역이 KTX개통 이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정차역으로서의 기능에만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단순 정차역 기능에만 그친다면 KTX 개통의 의미는 현저히 퇴색되고 만다. 오히려 익산역 주변 발전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될 수도 있다. KTX 역사의 경제성 확보 차원에서도 미래 발전을 확대재생산 할 수 있는 지역에 새로운 역사를 건립하는 게 생산적일 것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 맞물려 정치권 눈치 보기 급급

당초 호남선KTX역사 신설에 가장 동조하는 지역 가운데 한 곳이 김제시였다. 김제시는 지난달 호남선 KTX 개통과 함께 기존 KTX 노선이 사라졌다. 졸지에 전라선만 정차하는 김제시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현재의 김제역 이전을 줄곧 주장해왔다.
 

▲김제역사 이전 신설 등을 촉구하고 있는 김제시의회[자료사진]


지난 2011년 8월 최규성 국회의원, 이건식 시장을 비롯 시의회의장, 사회단체장 등 20여명은 한국철도공사와 국토해양부를 방문, 김제역 신설·이전 등과 관련 10만명 시민 서명부를 전달했다. 지난해 10월 김제시의회도 ‘호남권 KTX역사 이전 촉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의원들은 “전라북도 모두의 상생 발전을 도모하고 이용객들의 교통편의 증진과 고속철도 건설의 목적에 맞게 호남선 KTX 정차역이 전주 등 5개 시·군과 전북혁신도시, 새만금의 중심지인 김제 백구 인근에 건립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건의했다.

같은 시기에 전주시의회 역시 ‘호남권 KTX역사 이전 촉구 건의안’을 통해 “KTX 익산역사는 애초 계획됐던 복합환승센터가 아닌 단순 일반 역사로 증·개축되면서 크나큰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전주·군산·김제·완주지역 주민들은 호남선 KTX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호남·전라선KTX와 교차하는 전주~군산산업도로인 김제시 백구면 부용리 목과동 육교 [사진=박래윤 사진작가]


시의회는 “호남선 KTX역사는 지역의 미래가 달린 전북혁신도시·새만금개발사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데 모두가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며 “전주·군산·익산·김제·완주 등 전북 주요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곳에 KTX역사가 건립돼야 마땅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들은 이후 순식간 일제히 꼬리를 감췄다. 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누가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이 특히 그렇다. 익산시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강력 반발하고 있는데다 전북도마저 입장 변화를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 내 자신들에게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역사 이전 신설을 숙원으로 내세우며 가장 적극성을 보였던 김제시마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이 역시 정치성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대전을 지나치는 KTX 기존 노선에서 일부라도 김제에 서게 해 달라고 건의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호남선KTX역 이전 신설을 사석에서는 적극 공감하는 일부 식자층들도 공개적으로는 입을 봉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이해관계에 맞물려 이곳저곳 눈치를 봐야 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호남선 분리 신설 주장 지역 간 분쟁소지도 다분

익산역은 전라선 정착역으로 그대로 둔 채 호남선을 따로 분리해 교통여건이 좋은 곳에 신설 역을 설치하자는 주장에는 다수가 공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현실화시키기에는 첩첩 난관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로 인해 자칫 지역 간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 가장 우려스럽고 민감한 부분이다.

옳고 그름은 훗날 논할 일이긴 하나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허구한 날 앵무새처럼 짖어대는 ‘낙후·소외·홀대’라는 얘기는 이제 듣기도 역겹고 말하기도 민망스럽다.

지역경제가 이 지경인데 마냥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거나 이를 책임회피 용 면죄부로 활용하려만 들어서는 안 된다.

제 곡간 빈 것을 매번 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빈 곡간을 누가 채워줄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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