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어디를 가도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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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0-2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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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 =미국사회를 보면 이제 한인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한인의 수도 많이 늘었다.

예전에 이민 온 한인교포들은 자녀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자녀들이 의사 아니면 변호사가 되길 바라는 경향이 많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아직도 다수의 한인 교포들은 자녀들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한인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물어보나 마나 '의사' 아니면 '변호사'라는 답변이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교포사회도 몇 세대가 지나는 동안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민 2세, 3세들은 생각이 많이 다르다.

부모가 원하는 직업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 직종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수많은 직접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찰직으로 나가는 한인교포들도 크게 늘었다.

특히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에는 한인 경찰들이 배치된다. 영어가 서투른 교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인들을 위해 배치된 한인 경찰이 가장 싫어하고, 꺼려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한인들이다. 속사정이 있었다.

한인교포들은 일단 한인 경찰을 보면 대뜸 나이부터 묻는다. 그것도 반말로 묻는다. "너 몇살이야?"

미국인 경찰 앞에서는 벌벌 떨며 꼼짝도 못하던 한인들도 한인 경찰을 만나면 금새 힘이 솟는다.

그런데 힘이 이상하게 솟는다. 같은 민족, 같은 말을 쓰는 경찰이 왔으니 억울한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다짜고짜 나이를 물어보며 반말로 고함을 지른다. '내가 한국에 있을때 ~이었는데 잘 모셔라'라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음주운전을 하다 붙잡히면 '소주 한잔 한걸 갖고 잡는다'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 정도 되면 이게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린다. 한국의 공권력이 바닥에 떨어진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기를 거치며 죄없는 국민을 탄압하고 괴롭혔던 기억이 생생한 한국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경찰을 일제시대 순사 쯤으로 생각하고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특히 의무경찰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아들뻘, 손자뻘 되는 젊은 의경들은 '어르신'을 귀찮게 구는 만만한 존재가 됐다.

한국에서 그런 문화에 젖어 있던 사람이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 왔으면 미국의 법과 문화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한인경찰 뿐만이 아니다. 미국 경찰도 한국 경찰로 보이는 모양이다.

한번은 제보전화를 받고 50대의 한 한인 직업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사소한 교통신호 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혔는데, 노상에서 미국 경찰이 다짜고짜 테이저라고 하는 고압전기충격기를 쏴 기절을 하고 구치소까지 끌려가는 인권유린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미국에 이민와 산 지 30년이 다 돼 가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언론에 알려 미국 경찰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고 싶다는 것이었다.

취재에 들어갔다. 한인여성에게 테이저건을 쏜 경찰이 소속된 기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통신호를 위반했을 때 이 한인여성은 음주운전 상태였다고 했다. 문제는 경찰이 운전면허증을 달라고 했지만 주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반항을 했다는 것이었다. 차 문을 열고 나와서도 경찰에게 대들며 소위 말하는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인여성에게 이 사실을 확인하기 물었다. 그제서야 이 여성은 '그렇다'고 시인했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 "따지고 들면 봐줄줄 알았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라는 식의 잘못된 문화가 몸에 배어 있는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미국 경찰에게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됐던 것이다.

미국은 일단 법을 어기면 주지사든, 대법관이든, 시장이든, 연방 의원이든 체포한다. 억울한 것이 있으면 법정에서 풀면 된다.

미국경찰의 무리한 진압과정에서 억을하게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미국이다. 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 엄격하게 법집행이 되는 것도 미국이다.

자기보다 약해보이면 무조건 큰소리치고 윽박지르는 문화 아닌 문화. 얼굴 안 보인다고 전화기에 대고 욕을 해대는 정말 안 좋은 습관. 아이가 매장 안을 뛰어다니며 다른 손님을 불쾌하게 만들어도 오히려 제지하는 종업원에게 '가게 문 닫게 하겠다'며 협박하는 몰상식.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국민으로서 법을 지키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약한 이를 보듬는 그런 반듯한 한인들의 모습을 기대하는게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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