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 포기한 김준기 회장, “‘6.25·쓰나미’ 극복했지만 국지전에 무릎 꿇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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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0-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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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사진제공=동부그룹]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비록 지금은 여력이 없어 동부제철을 도울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언제라도 여건이 허락되는 한,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동부제철과 여러분을 지원하겠다는 결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23일 동부제철과 채권단간 경영정상화 이행을 위한 약정서(MOU) 체결에 앞서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인사말이다.

김 회장은 이날 철강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1970년대 초반 합금철 사업으로 철강업에 입문한 지 40여년만에, 1984년 동부제철의 전신인 일신제강을 인수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30년 만에 물러난다.

김 회장에게 있어 철강사업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세상에 태어나 의미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다 기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김 회장은 1969년 동부그룹의 효시가 된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설립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특수 바람을 타고 현지에 진출, 사세를 확장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생각한 ‘의미있는 일’은 건설·금융·운수 등 기존에 해왔던 영역이 아닌 제조업, 그 가운데에서도 산업의 쌀인 ‘철강’과 정보기술(IT)의 핵심인 ‘반도체’였다. 특히 철강은 반드시 이뤄내고 싶은 꿈이었다. 동부제철을 인수한 김 회장은 1972년 세계 최대 전기로 업체인 뉴코어를 견학한 뒤 한국에서 동부제철을 통해 뉴코어를 뛰어넘는 세계 제일의 전기로 제철소를 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절대 1위인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경쟁사들과 생존을 내건 치열한 싸움을 이겨내야 했다. 여기에 번 돈을 모으기보다 신사업에 재투자하는 김 회장의 의지 때문에 동부그룹의 유동성은 경쟁사에 비해 좋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동부그룹은 ‘구조조정’을 상시화 했다.

하지만 절대 동부제철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채권단과의 구조조정 협의 때마다 김 회장은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 등 아끼는 계열사를 매물로 내놨지만 동부제철은 단 번도 그러지 않았다. 김 회장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6.25동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쓰나미’라고 부르며 동부그룹을 비롯한 기업들에게 크나큰 위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때도 동부제철에는 오히려 투자를 단행했다.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철강은 내줄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켜낸 동부제철은 2009년 7월 1일 충남 당진에 전기로 일관제철소를 완공하면서 김 회장의 꿈은 현실화 됐다. 하지만 6.25동란,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복병이 엄습해왔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들에게 동시에 불어닥친 불황이다. 개선 조짐없이 침체가 이어지는 현실은 유동성이 취약한 기업에게는 공포였다.

김 회장이 그토록 끌어안고 싶었던 동부제철이 탈이났다. 전기로 제철소 건설을 위해 투입한 1조3000억원의 비용과 주 원료인 고철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외부에서 끌어다 쓴 차입금은 2조원이 넘는 등 그룹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됐다.

김 회장은 동부제철 차입금 1조3000억원에 대해 보증을 서고, 자택 등을 담보로 제공했다. 동부그룹 차원에서도 동부제철 재무구조 개선에 온 힘을 쏟았으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동부제철을 살리기 위해 경영권 포기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의 포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이 또 다른 애착을 보인 동부하이텍과 동부특수강 등이 매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김 회장이 대표이사에 올라있는 기업은 동부메탈과 동부대우전자 뿐인데, 그룹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두 회사를 비롯한 다른 계열사들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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