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톡]'굳으면 말짱 도루묵' 오원배 교수 "이게 바로 프레스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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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0-2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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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부터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파리 주택지붕 굴뚝담은 28점 전시

[오원배, Untitled,Fresco on acoustics panels,120x120cm,2014]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최대 20시간. 굳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죽치고 앉았다. 일어날새도 없이 시간보다 빠르게, 은밀하고 위대하게 해냈다.

거의 1년. 치밀한 고생끝에 나온 작품은 찐 햇감자처럼 보슬보슬하다.

23일부터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프레스코화를 선보인 작가 오원배(61·동국대 교수)의 작품이다.

 그는 "그동안 이토록 많은 색을 써본적 없다"고 했다. 석회가루와 시간과 싸워 이겨낸 그는 그 일을 "긴박하고 엄격한 노역"이라고 했다. 

 전시 타이틀도 '순간의 영속:그리기의 위대한 노역'으로 달렸다. 하지만 그림은 순해보인다. 석회를 감춘채 농밀한 색채를 빨아들인 그림은 순수한 아름다움이 잔잔하게 흐른다.

 정통 '프레스코화'를 정면에 내세운 이번 전시는 '프레스코화는 바로 이것이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에 차있다. 

 '그냥, 벽화 아닌가?' 한다면 오 교수의 작품을 봐야 한다.  그 생각을 바로잡기위해 까다롭고 힘든 이 작업을 했다.

작가이기전에 그는 영락없는 교수였다. 인터뷰는 '정통 프레스코화는 무엇인가' 를 주제로한 강의처럼 진행됐다.  

 "흔히 벽화를 프레스코라고 생각하지만 프레스코는 벽화의 일종일 뿐 모든 벽화가 프레스코인 것은 아니다"
 
[프레스코화를 설명하고 있는 오원배교수. 사진=박현주기자]

[아트사이드갤러리에 걸린 오원배의 프레스코화./사진=박현주기자 ]


 프레스코의 필수 조건은 석회의 화학 작용이다. 그는 "생석회(CaO)에다 물(H₂O)을 넣으면 수산화칼슘(Ca(OH)₂)이 만들어진다. 석회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결합해 탄산칼슘으로 화학적으로 변하는데 이 화학 작용을 이용해 그려야 제대로 된 정통 프레스코화"라고 설명했다. 화학시간처럼 절차가 복잡하지만 알고보면 간단하다.
 
 석회가 마르기 전에 끝내야한다.  '물에 젖은 석회가 굳기전에 그림을 그리고 칠해야'하는 작업이 프레스코화다. 만약 마른후에 덧바르게 된다면? 그건 세코(secco. 건식 프레스코)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기를 황금기로 볼수 있는 프레스코화는 회반죽을 칠한 벽 위에 직접 작업을 하거나 혹은 목탄 가루로 복사해 예비 드로잉을 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후 밑그림이 보이도록 엷은 석회를 바른다.  이 석회가 젖어있는 동안에 빨리 그려내기 때문에 캔버스나 목판에 비해 보존력이 탁월하다.  석회가 마르면서 생기는 얇은 막이 안료를 빨아 들여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오교수는 이 방법을 고수한다. 그는 거친 모래와 석회를 섞어 판넬에 한번 바르고 고운 모래를 섞은 석회를 그 위에 다시한번 발라 화면층을 만드는 준비작업을 거친후 밑그림을 화면에 전시시켜 준비작업을 끝낸다. 화면의 거친 재질감을 더하기 위해 표면을 다양한 도구로 문지르고 색칠을 하는데 이 모든 작업이 석회가 마르기전에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 시간이 바로 최대 20시간이다. 잠도 안 자고 꼼짝없이 그림 앞에 붙어 있어야 한다.

 "치밀해야죠." 작가는 "석회가 마르는 시간이라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어떤 것을 그릴지 철저한 계획하에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스코화가 나오기 직전 오원배교수는 파리에서 두달간 파리 굴뚝을 탐색하며 스케치했다. 사진=박현주기자]


 이 작업을 하는동안 10여kg이 빠졌다. 그는 "1270년경에 프레스코하다가 요절한 작가들이 있었다는데 나도 더 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도 했다.

 '노가다'같은 작업. 이렇게 힘든 작품을 한 이유가 뭘까.

 30여년간 교수로서 활동해온 그는 일단 교육적인 측면이 크다고 강조했다.  "프레스코는 엄연히 서양화의 중심인데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그는 "정통 프레스코화는 바로 이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요즘은 학생들이 어려운 작업들의 과정을 싫어한다.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있지만 신명이 나서 하지는 않는다."

 교수로서 작가로서 실천할 뿐이다. 그는" 내 작품이 표현력이 좋고 나쁨을 떠나 프레스코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며 "현대미술을 아이디어나 개념으로만 생각하는 풍토속에서 서양미술의 핵심인 프레스코화를 통해 예술 노동이 어떻게 개념화될수 있는가가 붓질의 의미를 넘어서 확대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자극적이고 즉흥적이고 금기에 도전하는 작업만이 능사인 줄 알지만 전통의 양식 속에도 현대의 문맥에 맞는 게 많습니다. 전통적인 표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느끼고 만들 수 있죠. 정신적인 원천은 전통에 있으니까요."  '자신이 진짜로 하는건지, 하는척에 취한건지 구분을 못하는' 작가들이 움찔할 만한 말이다.

 이번 전시에는 "파리 유학시절 어떻게 그려도 완벽한 그림 구도가 됐다"던 파리시내 지붕의 굴뚝 풍경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이전 무겁고 칙칙했던 그림과는 천지차이다. 실존적 고독과 생명력으로 표현되던 '나체의 인간'이 사라졌을 뿐인데 그림은 조명발을 받은듯 밝아졌다. 환해졌다고 변한건 아니다. 구조적인 면분할이 엄정하고 무거움은 여전하다. 그림 한점당 10~30kg이나 된다. 전시는 11월 19일까지. (02)725-1020.
 

[오원배 교수가 갤러리아트사이드에 걸린 자신의 프레스코화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박현주기자]

 ▶작가 오원배=195년 인천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수료했다. 1986년 서울 동덕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조선일보미술관 파리 씨떼 데잘 금호미술관 아트사이드갤러리베이징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파리국립미술학교 회화 1등상(1984), 프랑스 예술원회화 3등상(1985), 올해의 젊은 작가상(1992), 9회 이중섭 미술상(1997)을 수상했다. 인간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다양한 형태로 작업해오고 있다. 1970년대 '가면을 쓴 인간', 80년대 '짐승' 혹은 중성화된 생명체, 90년대 유령시리즈, 2000년대 들어 분할된 화면과 꽃, 건물과 같은 사물로 대상은 바뀌었지만 보편적 인간에 대한 질문과 사색은 여전하다. 2012년 개관한 강화 전등사에 프레스코 후불벽화를 그렸다.  OCI 미술과, 인천문화재단, 미술은행, 국립현대미술관, 법무법인 태평양, 서울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후꾸오까 시립미술관, 프랑스 문화성, 파리국립미술학교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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