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금융보신주의에 대처하는 은행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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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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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수영 IBK경제연구소 통계조사팀장

[황수영 IBK경제연구소 통계조사팀장]


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올해 144개국 중 80위에 그쳤다. 지난해 81위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가나(52위), 콜롬비아(63위), 캄보디아(65위)보다 낮은 것이다.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금융시장 경쟁력은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왜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왔을까.

평가방법을 살펴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금융관련 총 8개 평가항목 중 7개가 해당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리커트 척도(7점)에 따라 응답하는 설문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평가점수는 기업인들의 주관적 판단에 크게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기업인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한국 금융산업의 신뢰상실에는 안전위주의 대출 관행과 보신주의도 한몫했다. 재무제표 위주의 평가나 담보위주의 대출관행으로 기술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투자에 소홀하다는 게 여론의 비판이다. 

그러나 금융권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심각하다. 즉 기업입장에서 불리한 정보는 무조건 숨기려하고 유리한 정보만을 제공해 정확한 기업평가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담보가 없지만 기술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주기 위해서는 미래에 수익을 가져올지 판단할 수 있는 식견과 전문인력·시스템 등 인프라가 구비돼있어야 한다. 아직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무턱대고 자금지원을 확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관계형 금융에서 찾을 수 있다. 관계형 금융이란 금융기관이 고객과 오랜 기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획득한 정성적인 정보를 대출에 활용하는 금융기법이다. 지금까지 국내 은행은 재무제표나 신용등급 등에 따라 대출을 결정하는 거래형 금융에 기초를 두고 영업해 왔다. 이 때문에 신설기업이나 매출실적이 많지 않은 기업들은 자신의 잠재가치를 금융기관에 입증할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출거래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관계형 금융은 신뢰할 만한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정보의 비대칭문제를 완화해 대출확대가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 하우스방크라고 불리는 주거래은행이 제공하는 안정적 자금공급 역할이 경쟁력있는 중소기업 육성의 밑거름이 됐다. 특히 관계금융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 저축은행은 독일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인지도 조사결과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일본은 은행, 신용금고, 신용조합 등 중소기업 성장단계별로 적합한 형태의 메인뱅크가 지역밀착형 관계금융을 제공함으로써 유망 중소기업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기술 인재육성을 위해 거래기업에 신용금고직원을 파견하여 현장을 배우게 하는 교토신용금고의 현장연수제도 운영 사례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의 선별·육성을 위한 금융기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한 대형 시중은행에서는 일본의 인기드라마 ‘한자와나오키’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주인공 한자와나오키는 대출담당 과장으로서 책상에 앉아 중소기업의 재무제표에 따라 대출을 심사하는 다른 은행원들과는 달리 직접 공장에 찾아가 직원들의 업무태도와 의욕, 사장의 경영철학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 또한 거래처에 방문하였을 때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는 등 사무실의 느슨하고 무질서한 분위기에서 부실을 예견하기도 한다. 상사의 부당한 대출압력에는 저항한다. 열혈 은행원 한자와나오키는 은행원의 표상이기에 더욱 회자되는 것 같다. 우리도 보신주의가 아니라 소신을 갖고 행동하는 한자와나오키 같은 은행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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