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금융교육은 초등학생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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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0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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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미국의 초등학교 5학년생의 숙제다. "천 달러의 저금이 있다고 생각하라. 각자 주식 등 3가지 품목을 선정하여 투자하라. 매일 주가를 점검하고 3개월 후의 투자실적을 살펴보라. 도중에 투자품목을 바꾸어도 무방하다. 과제에 대한 평가는 투자실적이 아니라 매일 주가를 점검하고 왜 이 종목을 선정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써오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2000년대초 미 버지니아주에 머물 때,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받아 온 사회과목 숙제였다. 아들은 신문 주식 면에 빽빽이 써있는 기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투자종목을 정했다. 그리고 매일 신문 주식 면의 주가동향을 공책에 메모해 나갔다. 어른도 보기 어려운 주식란을 초등학생들이 형광펜을 그어가며 매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이 과제를 하면서 아이들은 주가동향과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영업상황이 어떤지 관심을 갖고 경제뉴스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갖게 된다.

1990년대 미국은 10년에 걸쳐 장기 호황을 맞았다.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경제 호황으로 고용도 크게 늘고 개인 소비도 눈에 띠게 좋아졌다. 그러나 경기 호전에도 불구하고, 금융 파산자가 200만명에 이르는 등 빈곤 문제는 여전했다. 일자리가 늘면 빈부격차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실제, 한 직장에 같이 입사한 사람들 간에도 십년 후 씀씀이와 삶의 질의 차는 벌어져 있었다.

지금 세계는 '저성장·저금리의 시대'로 돌입했다. 고금리 시절 직장인들은 저축을 통해 쉽게 자산을 늘릴 수 있었다. 또 부동산 가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올라가 재산 가치를 높여 주었다. 그러나 저금리 시대인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각자가 자기 책임 하에 자산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복잡한 금융상품이 등장하면서 고수익을 올리는 부류부터 원금을 날리는 경우까지 자산관리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금융교육이 절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만 금융에 대한 이해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른바 '금융문맹'이 널려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 의회는 2001년 '조기금융 교육법안'을 제정했다.

금융교육은 일찍이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또 학교에서 실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주에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식모의 거래를 포함한 금융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 금융교육의 내용은 다음 네 가지가 중심이다. 첫째 저축, 둘째 소비, 셋째 기부, 넷째 투자이다. 이 순서도 큰 의미가 있다. 우선 일정액을 저축하라는 것이다. 저축이 바로 금융습관의 시작이다. 여유 있을 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일정액은 저축하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건전한 소비를 가르친다. 물건을 아끼고 중시하며 신중하고 합리적인 구매 습관을 몸에 익힌다. 과시욕과 모방, 그리고 충동에 의한 구매는 철저히 지양한다. 셋째는 기부다. 일정부문은 반드시 불우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부를 함께 나누는 기부는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저축한 돈은 투자하여 재산을 불린다는 것이다. 투자는 자산관리의 꽃이다. 모의주식투자, 부동산투자게임 등을 통해 실질적인 투자방법을 청소년 시절부터 몸에 익힌다.

이제 경제는 자신의 건강과도 같다.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지키는 금융은 중요한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식생활에 주의하고 자신에 맞는 운동을 찾아 꾸준히 건강을 관리해 나가는 것처럼 우리는 리스크에 유의하면서 자신에 맞는 투자 방법을 찾아 자산을 관리해 나가야 된다. 어린 시절부터 바르게 쓰고 바르게 투자하는 금융습관을 몸에 익히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 금융교육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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