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7가지는(?)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4-04-17 16:32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강승훈 기자= 해상에서 역대 최악의 참사로 예고되는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과 관련, 사고 전반에서 갖가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부실한 초동 대처나 피해 집계 오류를 포함해 교육당국 발표 등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예정된 경로를 통해 운항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만일 정해진 항로를 벗어났다면 인재(人災)란 결론이 불가피하다. 16일 사고 직후 주 선장의 휴가로 다른 선장이 대신 키를 쥔 일명 '대리 운항'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서 항로 이탈 등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청해진해운은 대체선장의 여객선 운항을 확인하면서도 인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적극 부인했다. 운항을 책임진 선장 이모(69) 씨가 과거 8년가량 인천∼제주도행 여객선에 투입됐고, 인천해양항만청의 허가를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17일 해양수산부도 "당초 제출한 항로로 운항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권준영 해수부 연안해운과장은 "선박자동식별장치 AIS 궤적으로 파악한 결과 계획 항로와 실제 항로가 거의 일치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안내방송은 연신 '제자리 대기'를 강조했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 승무원들은 탑승객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그대로 있으라"는 방송을 수차례 거듭했다. 이로 인해 충분히 대피할 시간이 있었지만 어이없이 당한 셈이다.

선사 측이 오히려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사고 당시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면 여객선의 선체가 60도가량 심하게 기울어져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동안에 "객실이 더 안전하니 안으로 들어가서 대기하라"는 방송이 되풀이된다.

해상의 안전수칙에 대해 사전 숙지하지 못한 승객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고, 이로 인해 차가운 바닷물이 객실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속수무책으로 이를 지켜만 봤을 것이란 증언이 나온다. 즉, 선사 측이 자체 수습을 이유로 초기 대응에 실패하며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다.

사고 당일 운항을 책임진 이모 선장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이씨는 2급 항해사 면허 보유자로 밝혀졌다.

당장 운항자격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현행 선박직원법상 3000t급 이상 연안수역 여객선의 경우 2급 항해사 이상의 면허를 보유하면 선장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국내 최대급 규모의 크루즈선을 2급 항해사가 운항했다는 점에서 일부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씨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탑승객 수백 명을 두고 현장에서 먼저 빠져나와 비난이 거세다. 선원법에 따르면 선장은 인명ㆍ선박ㆍ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 이를 실행하지 않았을 땐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사고 원인을 두고서도 각계 견해가 엇갈린다.

수사인력을 대거 투입해 사고원인 파악에 나선 서해해경청은 암초나 타선박과 충돌 여부 등 다각도로 조사 중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다닌 항로에는 암초 등은 없다고 전해 한 가지 의문점을 배제시켰다.

해상교통관제센터(VTS) 항로 궤적 등을 점검, 여객선이 16일 오전 8시 20분께 운항속도 19노트에서 사고 시간으로 알려진 30여 분 뒤 8노트로 급속히 감속한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 날 해경은 급격한 방향전환을 침몰 원인으로 압축시켰다. 선장 이씨 등 주요 승무원에 대해 조사를 벌였고, 변침(항로를 변경하는 지점)에서 급히 방향을 전환한 게 사고 원인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급격한 변침으로 선체 내 1, 2층의 차량과 화물들이 풀렸고 동시에 배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졌다는 설명이다.

참사를 낸 세월호는 건조된 지 20년차인 노령화된 배다.

국내에서 운항 중인 여객선 가운데는 최대 규모인 6825t급이다. 2010년 침몰한 천안함보다 5배 이상 크다. 1994년 일본에서 제작돼 2012년 국내로 들여왔다. 해운법 시행규칙에서는 여객선의 선령을 20년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 검사를 통해 운항에 지장이 없으면 1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2월 정기 안전검사를 받고 운항을 1년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천후 속에서도 학교는 왜 수학여행을 강행했을까.

당초 세월호는 15일 오후 6시 30분 인천항을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학여행에 참가한 단원고 학생 325명 등 승객 459명은 오후 8시 30분께 탑승을 시작했다. 해상의 짙은 안개 탓이었다.

오후 9시가 약간 넘어 인천항을 떠난 세월호는 결국 16일 오전 8시께 도착 4시간가량 남겨두고 물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학교 측이 위험한 상황에서 수학여행을 강행해 사고가 터진 것 아니냐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정부의 '오락가락 발표'도 도마 위에 오른다.

사고 당일 오후 4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긴급 브리핑에서 여객선 탑승인원 459명(선원 30명ㆍ일반인 89명ㆍ학생 325명ㆍ교사 15명)에 사망 2명, 실종 293명, 구조 164명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앞서 오후 2시에는 구조자 수를 368명으로 알렸다. 이후 약 1시간 뒤 해양경찰청 측에서 집계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통보했고, 오후 3시 30분 이경옥 안행부 제2차관이 정정 브리핑을 통해 오류를 시인했다.

불과 2시간 만에 실종자가 2배 넘게 늘었고, 사고 가족들을 재차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경옥 2차관은 "애초 구조자 숫자에 착오가 있었다. 민간, 군, 해군이 동시다발적으로 구조하다 보니 정확한 숫자에 착오가 있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