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화백 "단순한 그 점하나 때문에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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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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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겐하임전 이후 갤러리현대서 15일부터 개인전..대화시리즈 회화 10점 선봬

 

구겐하임전 이후 15일부터 갤러리현대서 8년만에 개인전을 여는 이우환화백이 14일 전시장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시안작가들의 작품을 오리엔탈리즘이다, 아시아틱이다 하는데, 그건 대단히 부정적인 단어에요. 우리나라식으로 한다면 한국적이라고 하는데, 그건 평가안한다는 뜻입니다. 우리하고는 관계없다고 하는 말이에요. 내 입으로 한국적이다 하지마세요. 세계적이다고 말하면 자기입으로 소외시키는 말이에요. 촌놈들이 하는 말입니다. 나는 이런 말들이 부끄럽기짝이 없어요."

'점 하나'로 국내외 컬렉터들을 매료시킨 화가 이우환(75)은 단순한 작품과는 달리 말이 길었다. 하지만 '엄격한' 작품처럼 대체로 비평적이었다.

명상적인 작품이어서 동양적이라고 불릴 법도 한데 그는 "나에게 있어 동양적이라는 말만큼 미심쩍은 것은 없다"며 "동양적-오리엔탈이라는 말에서 해방되어 한 작가로서 존재와 그 개인적인 일의 질을 묻는 지평에 서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이우환화백이 14일 기자들을 만나 '여백의 예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4일 사간동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도인들이 그러하 듯 소탈한 모습이었다. 청바지와 점퍼를 입고 자주빛 목도리를 걸치고 나타난 그는 왜소했고 길거리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할아버지였다.

그가 세계미술시장의 중심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고, 국내에선 쉽게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블루칩작가라고 누군가 귀띔해야 다시 보고 놀랄 정도로 평범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 점, 선, 바위덩어리가 철학이 되고, 또 그의 예술이 특별해졌다. 화가이면서 철학을 공부한 그의 말은 개념과 철학이 뒤섞여 어렵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했다. 작품과 똑 닮았다.

그는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미학이나 사회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할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는 신념때문이었다. (일본국적이라는 소문과 달리 그는 이제껏 한국국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철학은 그의 예술의 자양분이 됐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바람에서, 바람과 함께, 조응등 작품 제목 또한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이 화백은 일본에서 만개했다. 그는 모노하 운동을 이끌었던 이론가였다. 회화나 조각에서 가능하면 손대는 것을 자제하는 운동, 모노하 운동의 선두에 서 있었다. 바위와 쇳덩이 철판을 그대로 두고 '이것이 작품이다'고 지금껏 보여주는 그의 작품이 모노하 정신이다.

돌 철 나무 등 재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며 사물 공간 인간의 관계를 재고하게끔 만드는, 있는 그대로의 것과의 관계를 논하고, 절제와 공존을 지향하는 예술세계를 펼쳐오고 있다.

Dialogue_2011_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_291 x 218 cm.

◆'있는 그대로의 것'과 '극한의 절제'

15일부터 갤러리현대에서 여는 그의 개인전 '대화(Dialogue)'는 '극한의 절제'로 팽팽한 기운이 진동한다. 구겐하임전 이후 첫 개인전이고 갤러리현대서 8년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그는“이보다 더 간략해질 수 없을 정도로 극한으로 간략화하고 절제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218X291cm 캔버스 화면에 담긴 '점 하나'는 붓 터치의 크기가 대담하게 커지고 터치 내부 톤의 농담의 변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회화와 수채화 신작 10점을 선보인다.

예술은 궁극의 경지에서는 단순해지고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던가.

 "이것 나도 할 수 있겠다"고 할 정도로 단순해 보이지만 '그냥 미니멀아트'가 아니다.

지난 6월~9월 연 구겐하임 전시 이후 후기 미니멀리즘을 이끌어갈 작가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작가 자신은 정작 미니멀리즘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내 작업에 대해 미니멀리즘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90%가량 되는데 내가 단순한 작업을 하니까 그런 것 같다"며 그는 "미니멀리즘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것외에 그 무엇인 것, 그것을 최소화하고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 이외의 그 무엇’을 추구하기 위한 것.  점 하나,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그는 "누군가 간단한 걸 가지고 뭘그래?"라고 하겠지만 그 점하나 때문에,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점은 80년대말~90년대초 생각이 정리된 게 나왔다. 90년대에는 큰 점들이 10여개 있었고, 2000년들어 4~5개로 줄었다. 또 3~4년전부터는 1개만이 완전히 정착했다.

그는 점을 그리려면 "대단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안그러면 바이브레이션일 일어나지 않는다. 점 하나 가지고 아침부터 밤 9~10시까지 끙끙대기도 하고 일주일 열흘넘게 물감이 꼬들꼬들 마르기를 기다린다.

"호흡이 중요합니다. 호흡을 먹고 하기때문에 오랫동안 많이 해왔어도 힘든 작업입니다. 숨을 내쉬면서 하면 작품이 망가집니다. 대단히 버틸수 있거나 가다듬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요. 앞으로 얼마까지 갈지 자신이 없어요. 4~5년전만 해도 1년에 10점~20점을 했는데,이젠 1년에 10점 정도로 줄어들고 있어요."

Dialogue_2011__Watercolor on Paper_77x57cm.

◆'여백의 예술'..팽팽한 '밀당'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대화’시리즈는 '여백의 예술'이 특징이다.

"내가 말하는 여백은 동양화에서 흔히 얘기하는 여백과는 다릅니다.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 만든 것과 만들어지지 않은 것, 내부와 외부가 자극적인 관계로 서로 작용하고 울려퍼지는 것,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공간이 여백입니다. 즉,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 벽, 공간 전체에 울림을 주는 그런 현상을 작품을 통해 느끼게 하고 싶어요."

그는 작가들이 사용하는 창조란 말에 부정적이다. "신이 만든 것처럼 억지를 부려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그는 창조대신 '재=제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뭔가 으시대는 개념에서 물러서서 다시 제시함으로써 다른 의미에서 창조가 되지 않을까 한다"며 원효대사와 설총의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다.

안과 밖의 힘이 넘치는 관계까지도 표현해내는, 관계항. 무한정한 세계로 인도하는 그는 그림을 머릿속에 두고 터질 것 같은 긴장감으로 작품과 '밀당'을 한다.

"종을 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포함해서 그 전체에 울림을 줄 수 있는것에 대한 것이 내 관심입니다. 캔버스, 붓 물감 내 호흡의 역할이 다 살아나야하지요. 그린다는 행위는 신체성을 무기로 세계와 접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남이 봐서 몰라도 괜찮다"는 그는 "좀더, 좀더,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끊임없는 반복과 수련을 거듭해오고 있다. 일본 미술평론가는 그를 '저 너머의 세계로 인도하는 조용한 선교사'라고 불렀다.

이우환화백은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그리고 초월적인 것'이라며 "나는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서로 침투하기도 하고 거절도 하는 다이내믹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관계작용에 의해 초월적인 공간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비싼작가, 구겐하임미술관 작가, 일본 나오시마에 이우환미술관이 있는 작가. 그는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바랄까.

"나는 인간의 힘을 자만하는 듯한 불멸의 작품을 그리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월이 흐르면 결국 그림도 너덜너덜해져 없어질 것이고 자연과의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백 년, 혹은 몇백 년간 인정을 받고 기억되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어요. 인간은 필사적으로 세계를 만들어 세우려고 하고, 자연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대지로 되돌리려고 하지요. 있게 하려는 힘과 없애려는 힘의 치열한 맞섬은 아름다운 겨룸입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고 견고하며 잘난체 버티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저 내가 ‘예술’이라는 것에 작은 꼬투리, 하나의 힌트를 주는 그런 존재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시는 12월 18일까지. (02)228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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