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임시정부 100년 한·일 역사문화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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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권병현 초대 주중대사 "한정 상무위원은 상해 임시정부 지켜낸 친한파"
권병현 초대 주중 한국대사 [아주경제 자료 사진] "평창동계올림픽에 중국을 대표해 한국을 찾는 한정(韓正) 상무위원은 사실 알려지지 않은 친한파다. 한국에서는 한 상무위원의 방남을 의외라고 보지만, 우리나라와 상당한 숨은 인연이 있다." 7일 권병현 초대 주중 한국대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상무위원은 상해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와 깊은 인연이 있고, 우리한테는 은혜가 있는 인물"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권 전 대사와 한 상무위원의 첫 만남은 1992년 8월 25일로, 한·중 수교가 이뤄
2018-02-08 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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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⑩]고정희의 시 '남자현의 무명지'
[사진 = 안중근의사가 피로 쓴 태극기.] 구한말의 여자가 다 이리 잠들었을진대 동포여, 무엇이 그리 바쁘뇨 황망한 발길을 잠시 멈추시고 만주벌에 떠도는 남자현의 혼백 앞에 자유세상 밝히는 분향을 올리시라 그때 그대는 보게 되리라 ‘대한여자독립원’이라 쓴 아낙의 혈서와 무명지를 보게 되리라 경북 안동 출신 남자현. 열아홉에 유생 김영주와 결혼하여 밥짓고 빨래하고 유복자나 키우다가 딱 깨친 바 있어 안동땅에 자자한 효부 열녀 쇠사슬에 찬물을 끼얹고 여필종부 오랏줄을 싹둑 끊으니 서로국정독립단 일원
2018-02-08 15: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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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⑩]만보산 갈등과 김동삼 구출실패, 아픔은 깊었다
만보산 사건, 김동삼 체포 사건, 그리고 리턴조사단의 만주 방문. 세 가지 상황은 독립투사 남자현을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했다. 좌절과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건 진북(眞北)에 뜬 별 하나, 오직 '조국'이었다. 찢어진 민심을 달래고, 동지를 구출하려 내달리고, 또 조국의 억울한 실상을 알릴 기회를 잡기 위해 피의 결단을 내린 그 마음에는, 오직 나라의 독립만이 비원(悲願)으로 자리할 뿐이었다. [사진 = 만보산 지역의 수로. 1931년 7월2일 중국 길림성 장춘현에서 조선농민과 중국농민이 물 문제로 충돌했
2018-02-08 14: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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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⑨]중국 감옥에 갇힌 도산 안창호를 극적으로 구출하다
[사진 = 영화 '암살'의 한 장면.] # 체포 영장 내미는 경찰관 홍부장을 감화시키다 남자현의 무용담 중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 중의 하나는 홍순사 에피소드이다. 이 이야기는 잡지 <부흥>에 나온다. “왜적들은 선생을 붙잡으려고 대활동을 개시하였는데 선생이 호탄현 지방을 지나다가 홍순사라는 자에게 걸렸다. 선생은 그를 향하여 책망 절반 설유(說諭, 설득과 회유) 절반으로 ‘내가 여자의 몸으로 이같이 수천 리 타국에 와서 애씀은 그대와 우리의 조국을 위함이거늘 그대는 조상의 피를 받고 조국
2018-02-07 10: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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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⑧]조선영혼의 말살자, 사이토 총독 암살하려 했던 그들
사이토총독은 부임 때부터 암살 시도에 시달렸다. 테러리스트는 노인이었거나 전문적인 독립투사가 아닌 청년이었다. 뜻밖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일제는 조선민족이 지닌 불굴의 강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 강우규 의사] 강우규 의거 = 1919년 9월2일. 65세의 강우규(1855~1920)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대문역(구 서울역)에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제3대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맞이하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이었다. 그 속에 강우규가 있었다. 사이토총독 부부가 마차에 오르려
2018-02-06 14: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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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⑧]사이토총독 암살하라, 혜화동서 총 닦는 여자
# 만주생활 7년, 그녀는 무장투쟁가로 바뀌었다 만주로 온지 7년, 1926년 53세의 남자현은 교육자, 종교인에서 독립투쟁 쪽에 더욱 깊이 발을 담근다. 독립운동을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에서 나아가 투쟁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독립군을 치료하는 자모(慈母)의 역할이나, 쪼개져 싸우는 독립진영들의 결속을 다지는 ‘내부화합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넘어서서 직접 일제와 싸우는 투쟁가로 바뀌어갔다. [사진 = 영화 '암살'의 한 장면.] 이 시기의 남자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북 영양
2018-02-06 13: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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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⑦]1948년 잡지 '부흥'이 보도한 남자현 단지(斷指)사건
액목현 시절 남자현이 단지(斷指)를 한 사건에 대해서는 해방 이후 잡지 <부흥>에서 소개하고 있다. [사진 = 전북우정청이 2016년 발행한 호국영웅 기념우표 '남자현'.] 조선 민족의 결점은 당파와 분쟁이라. 이로써 나라가 망하였거늘 조국 광복을 운동하는 그네들이 또 외지에 가서도 당파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서북파니 기호파니 안파니 이파니 하여 1922년 3월부터 8월까지 남만 환인현 등지에는 동족 간에 피 흘리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김리대씨가 특파되어 화해공작에
2018-02-05 13: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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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⑦]독립군 단합을 호소하며 손가락 둘을 자르다
#마적단과 담판을 벌여, 사람과 말을 되찾다 독립군과 중국 마적단 간에 가끔 알력이 있었다. 조선 독립투쟁을 벌이는 청년들 중에 중국 마적단으로 가버린 사람이 있었다. 청년은 독립군 부대로서는 귀하디 귀한 말을 타고 가버렸다. 남자현은 마적단 두목 앞으로 편지를 썼다. [사진 = 영화 '암살'의 한 장면.] “나라 잃은 사람으로 의리마저 잃으면 되겠습니까. 젊은 혈기에 말을 끌고 가버린 우리 독립군 대원이 있으니, 마필과 함께 되돌아오게 해주십시오. 일제와 싸워야 할 우리들이, 서로를 상처내는 것은
2018-02-05 12: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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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⑥]그대, 만주를 아는가
십이월의 북만(北滿) 눈도 안 오고/오직 만물을 가각(苛刻)하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비적(匪賊)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청마 유치환의 시 '首(수)' 중에서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 ‘만주 웨스턴’ 영화가 유행을 타던 때가 있었다. 미국 할리우드의 서부 활극을 흉내낸 장르로 만주독립군의 전투와 이들을 돕는 여성의 로맨스가 골격을 이루는 영화들이었다. 1970년 김영효감독의 ‘황야의 외팔이’나 1971년 이만희감독의 ‘쇠사슬을
2018-02-04 13: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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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⑥]독립군들을 동상에서 구해준 '만주의 어머니'
# 만주생활의 발견, 남자현은 벼농사 보급과 교육부터 시작했다 초기에 남자현은 아들과 함께 통화현의 한 시골마을에 집을 짓는다. 통나무를 우물 정(井)자 형태로 거듭 쌓아 지붕을 돌이끼로 덮는, 이 일대 특유의 ‘틀방집’이었다. 이 무렵 서로군정서 부독판을 지낸 여준(呂準, 1862-1932)이 많이 도와주었다. 여준은 여조현(祖鉉 ·肇鉉)으로도 불렸다(호는 시당(時堂)). 정주 오산학교 교사 출신으로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웠던 교육자이다. 그녀는 11세 연상의 그에게 사석에선 ‘여선생’이라고 부
2018-02-04 13: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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