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기사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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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7] 북경의 바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②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쿠빌라이 후반기에 대도 완성 [사진 = 대도성 위치도] 대도 건설에는 20년이라는 많은 기간이 소요됐다. 실제로는 쿠빌라이 말기에 가서야 비로소 도시가 거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거대한 도시의 건설은 사전에 세워진 면밀한 계획과 설계에 바탕을 두고 추진됐다. 하지만 지금의 대규모 공사처럼 기공과 준공기간을 정해 정확히 맞춰나가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몇 단계에 걸쳐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밟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 철저히 계획된 대도 [사진 =
2017-11-17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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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6] 북경의 바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①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세계와 연결하는 통상제국 구상 대 쿠릴타이를 열려던 시도가 무산되면서 쿠빌라이는 대칸의 권위와 군사력을 통해 제국 전체를 강권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렵게 됐다. 때문에 정복보다는 경영이라는 측면에 무게를 둔 통치 방식을 고려하게 된다. 초원의 군사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정체계를 정비하고 재정기반을 확보해 제국 전체를 하나의 물류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그 것이었다. 그 것을 이루고 난 뒤 바다와 육지를 통해 세계로 연결해 가는 시스템, 즉 바다와 육지를
2017-11-16 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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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5] 원나라는 중국 왕조 계승국가인가?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원천적 정신세계는 몽골에 바탕 [사진 = 쿠빌라이 초상화] 쿠빌라이가 몽골의 초원을 제쳐두고 중국 땅을 본거지로 삼아 그의 꿈을 펼쳤다. 일부 몽골학자들은 이는 쿠빌라이가 어린 시절 중국인들 사이에서 자라나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동방으로 기울어진 통치를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쿠빌라이가 몽골의 다른 누구보다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는 점에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사진 = 몽골의 오보] 이러한
2017-11-15 10: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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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4] 쿠빌라이는 왜 과소평가 됐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정통성 확보가 큰 과제 [사진 = 쿠빌라이 초상화] 쿠빌라이는 사실상 쿠데타를 통해 대권을 잡았다.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정권은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항상 그 짐을 벗어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안간힘을 쓴다. 특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노력을 해온 것을 우리나라의 가까운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쿠빌라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쿠빌라이도 정통성을 확보한 뒤 全몽골제국의 대칸으로서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거대한 제국의 통치자 역
2017-11-14 10: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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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3] 상도(上都)는 왜 폐허로 남았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열락(悅樂)의 궁전 상도(上都) "쿠빌라이 칸은 상도(자나두)에 장엄한 열락의 궁전을 지으라 명 했네 그 곳에는 성스러운 강 금련천(알프)이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동굴을 지나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바다로 흘렀노라. 구불거리는 시냇물로 반짝이는 정원들이 있었고 그 곳에는 향기를 지닌 많은 나무들이 꽃을 피웠네. 또 여기에는 언덕만큼이나 오래된 숲들이 햇빛이 비치는 녹지를 에워쌌구나."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콜리지가 쿠빌라이 칸이라는 시에서 그려낸 대원제국의 여름 수도 상도
2017-11-13 15: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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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2] 왜 대칸이 두 명이 됐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쿠빌라이, 대칸 취임 [사진 = 경화도와 북해공원] 장강에서 돌아온 쿠빌라이의 세력들은 지금 북경 근처 중도의 경화도(瓊華島)에 모였다. 그리고 다음 수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카라코룸에 있는 아릭 부케는 몽골본토의 총독이자 카라코룸의 유수로서 쿠빌라이에게 뭉케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을 요구했다. 쿠빌라이는 아예 그럴 생각이 없었다. 형 쿠빌라이 측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아릭 부케도 위기감을 느끼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뭉케의 세력을 불러 모으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에
2017-11-12 10: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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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1] 쿠빌라이는 왜 장강(長江)을 건넜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전쟁을 선택한 대권 도박 [사진 = 사냥에 나선 쿠빌라이] 명분과 세력에서 약세인 쿠빌라이가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가장 단순한 수순은 막내 동생 아릭부케와 한판 승부를 벌여서 대권 싸움의 결판을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승산이 희박했다. 쿠빌라이는 참모장 바아투르와 머리를 맞댔다. 그는 쿠빌라이의 정부인인 차비의 친언니 남편, 그러니까 손위 동서였다. 쿠빌라이로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과 함께 당시의 정세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선택
2017-11-11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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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80] 뭉케의 죽음은 어떤 사태를 불렀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남송 원정 쿠빌라이 제외 [사진 = 뭉케의 남송원정도] 1257년, 뭉케는 남송과의 전쟁에 나선다. 지지부진한 남송과의 전쟁을 조속히 마무리 짓기 위해 대칸인 자신이 직접 앞장 선 것이다. 뭉케는 남송 원정에 나서면서 쿠빌라이를 배제시켰다. 이에 관한 설명이나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독자세력을 키워나가는 쿠빌라이에 대한 뭉케의 견제이자 불만에서 나온 처사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쿠빌라이의 자리는 동방 옷치긴(칭기스칸의 동생)家의 젊은 후계자 다가차르가 대신했다.
2017-11-10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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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9] 쿠빌라이는 기회를 어떻게 만들었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영웅보다는 탁월한 통치가 [사진 = 쿠빌라이 초상화] 칭기스칸의 막내 툴루이의 둘째아들인 쿠빌라이! 그는 대몽골제국을 완성한 인물이다. 할아버지 칭기스칸이 제국의 바탕을 만들었다면 그 바탕위에 대원(大元)제국을 만들어 팍스 몽골리카(Pax-Mongolica)를 실현한 인물이다. *팍스-몽골리카((몽골에 의한 평화) : (몽골 제국의 정복전쟁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이 정치적 단일체제로 편성되고 그 속에서 광범위하고 긴밀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진 현상) [사진 = 할
2017-11-09 1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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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8] 뭉케시대는 왜 징검다리 정권인가?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쿠빌라이 정권 태동 준비 [사진 = 뭉케 초상화] 과격한 출발로 생긴 가문들 사이의 앙금을 불안정한 요소로 지닌 채 뭉케 정권이 출범했다. 제국의 권력이 오고타이가에서 툴루이가로 옮겨가면서 서방으로 향하던 관심은 동방지역으로 돌려지게 된다. 유럽지역으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이와 함께 또 한사람의 영웅인 쿠빌라이 정권의 태동이 준비되고 있었다. ▶ 준비된 제왕 뭉케 [사진 = 뭉케시대 동방 정벌도] 숙청이라는 과격한 방법으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마흔 네 살에 대칸의 자리에
2017-11-08 09: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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