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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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10] 전통 유목사회는 어떻게 붕괴돼 가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얄타회담, 외몽골 현상유지 결정 [사진 = 얄타회담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휴양도시 얄타에서 전후(戰後) 국제정치의 틀을 결정하는 회담이 열렸다. 한반도의 신탁통치가 비공식적으로 언급됐던 이 회담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이 참석한 이 회담에서 전후 몽골의 운명도 정해졌다. ‘몽골인민공화국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한다.(Status quo)’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2차 대전의 종결과 일본의 패망 이후 몽골의 운명은 얄타회담에서
2018-04-07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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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9] 할힌골 전투 승리의 의미는? ②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초반 공중전 일본군 우세 일본은 소련과의 이 대규모 전투를 중국 쪽의 지명을 붙여 ‘노몬한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당시로서는 가장 최신의 무기와 장비 그리고 전투기가 동원된 전쟁 수준의 전투를 ‘사건’이라고 축소시켜 놓은 것만 봐도 이 전투가 어떻게 전개돼 나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중국 공습을 통해 우세한 공군력을 과시했던 일본군은 초반전에 자신만만해 있었다. 그래서 대규모 공습을 통해 전세를 장악하려 했다. 하지만 소련은 중국이 아니어서 거칠
2018-04-06 07: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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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8] 할힌골 전투 승리의 의미는? ①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근세의 자랑거리 할힌골 전투 몽골인들에게 근세 들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꼽으라면 1,939년 일본의 관동군과 벌인 할힌골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내세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륙장악을 위해 기세를 떨치던 일본과의 전투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으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할힌골 전승기념탑] 그래서 이 전투에서 승리한 9월이면 지금도 승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펼쳐진다. 전투의 현장이었던 할힌골에는 당시의 승전을 기념하는 전승탑(戰勝塔)이 우뚝 솟아 있다. 그
2018-04-05 08: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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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7] 티베트 불교는 얼마나 탄압 받았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종교탄압 피신 동굴 [사진 = 테렐지 근처 바위동굴] 울란바토르 근교의 휴양지 테렐지를 가다보면 길옆에 그리 크지 않은 바위산이 눈에 들어온다. 암벽 등반을 하듯 어렵게 그 바위산을 타고 올라가 보면 바위 틈새로 50평가량의 널찍한 공간이 열려 있다. 바위 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1,930년대 말 티베트 불교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바람이 몰아 닥쳤을 때 라마승들이 숙청의 칼바람을 피해 숨어 지내던 곳이다. 입구 쪽은 그래도 빛이 들어와 괜찮았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
2018-04-04 08: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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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6] 몽골의 ‘스탈린’은 누구인가?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코민테른의 역할 축소 1,930년대가 시작되면서 소련이 사회주의 개혁을 몽골에 강압하는 과정에 두 가지 사실이 눈길을 끈다. 하나는 그 때까지 몽골의 사회주의화를 유도해온 코민테른의 역할이 크게 줄어든 점이다. 중국에서의 공산혁명 실패로 코민테른의 지도방침이 흔들리게 됐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몽골이야 이미 안정적으로 영향권 내로 들어왔다고 소련이 판단했다면 굳이 코민테른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몽골에 대한 정치지도 역할이 소련 공산당으로 이전됐다. 말하
2018-04-03 07: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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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5] 몽골은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가 되나? ③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중국이 주(主), 몽골은 종(從) 코민테른은 중국의 정세에 개입해 국공합작을 유도한 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소련의 의도는 중국의 공산혁명을 최종 목표로 두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선 공산당은 힘이 미약했기 때문에 국공합작을 유도해 국민당 속으로 파고 들어가도록 만든 뒤 국민당을 장악하는 수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사진 = 공산당이 탈취한 국민당 무기] 그 것을 발판으로 중국의 공산혁명을 이끌어 내겠다는 의도였다. 그래서 소련으로서는 중국의 사태가 주(
2018-04-02 08: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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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4] 몽골은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가 되나? ②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연맹 속에 포함되지 않은 몽골 [사진 = 카자흐 알마아티] 1922년부터 시작된 소비에트 연맹 결성 작업은 2년 동안에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을 그 틀 속으로 편입시키면서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미 소련의 영향권 아래 들어간 몽골도 소련에 가입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몽골은 왜 그 속으로 편입되지 않았을까? 몽골의 경우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이라는 걸림돌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민테른, 중국 1차 국공합작 유도 [사진 = 중국 공
2018-03-30 08: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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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3] 몽골은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가 되나? ①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몽골을 염두에 둔 용어 ‘위성국가’ 흔히 몽골을 세계 두 번째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소비에트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회주의 체제를 받아들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련과 관련해 몽골에 붙여지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위성국가라는 말이 그 것이다. [사진 = 동구권 舊소련 위성국가] 냉전구도가 종식되면서 이 위성국가라는 말은 역사적인 개념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하지만 과거 동서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가군(國家群)에 주로
2018-03-29 07: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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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2] 이태준은 왜 몽골에 갔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이태준 추모 기념비 제막 [사진 = 이태준 추모비] 새 천년이 시작된 2천년 7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7월의 나담 축제 분위기로 무르익고 있었다. 복드산 아래 넓은 초원에는 나담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곳곳에 게르를 짓고 곧 있을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같은 때, 몽골 대통령궁이 자리 잡고 있는 복드산 북쪽 기슭에서도 한국인들과 몽골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20세기 초 몽골 땅에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값진 삶의 족적
2018-03-28 07: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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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01] 몽골은 어떤 과정을 거쳐 독립하나? ②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몽골인민당 결성 당시 몽골 내부에서는 하나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중국 군벌에 의해 몽골의 자치가 취소된 1,919년을 전후해 몽골의 정치적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몇 개의 소그룹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서로 연대 활동을 통해 1,920년 6월 몽골인민당을 결성했다. [사진 = 수흐바타르(몽골국립박물관 소장)] 몽골인민당의 창설을 주도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 20대의 수흐바타르였다. 그는 식자공으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의용군에 들어가 무장독립군 지도자로 성장한 인
2018-03-27 07: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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